정부가 임신 9주 이하 여성을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지 약물의 단계적 도입을 공식화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16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인공임신중지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제도적 공백이 이어지면서 일부 여성이 위험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며 “더 이상 찬반 논쟁 속에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초기 2년간 병원에서 처방과 조제가 함께 이뤄지도록 하고, 이후 여건이 갖춰지면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발표를 두고 의료계와 종교계의 반발이 거세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철저한 준비 없이 약물이 무분별하게 유통될 경우 다량 출혈, 감염증, 불완전 유산에 따른 응급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70여개 종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 등은 “생명에 관한 결정을 행정 절차로 대신하지 말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을 함께 담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온전한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임신중지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총리는 “생명의 가치에 대한 우려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안전한 의료체계 안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 방법을 수술로 한정하고 있어 약물 사용에 대한 규정이 없다. 법제처가 지난 8월 관련 법 개정 없이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의료계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정적 추진을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다만 이번 도입안은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함께 ‘안전성 가이드라인’의 내용,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의 세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필요한 입법과 제도 정비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는 안전 관리 체계와 유통 시스템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초기 2년간 병원 중심 운영 이후 약국 조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처방·조제 기준, 이상 반응 대응 체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이상 반응 대응과 약물 안전 관리 방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와의 합의 도출 여부가 향후 정책의 실효성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