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판매 중인 차량 10대 중 약 7~8대는 측면 창문이 망치로도 잘 깨지지 않는 접합유리로 만들어져, 침수나 추돌 사고 때 창문을 깨고 탈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완성차 6개 브랜드의 판매 차종 47종을 조사한 결과, 76.6%(36종)가 1열 이상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아 K9과 제네시스 G90은 후면유리까지 모든 창유리에 접합유리를 기본 장착해 비상시 창문 파괴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였다.

접합유리는 두 장의 유리 사이에 고분자 필름을 넣어 압착한 것으로, 소음 저감 효과가 있고 강화유리보다 충격에 훨씬 강하다. 소비자원이 2.26㎏ 강구를 떨어뜨린 실험에서 강화유리는 5m 높이에서 파손·관통됐지만, 접합유리는 5m에서 파손돼도 관통되지 않았고 10m에 이르러서야 관통됐다. 비상탈출용 망치 4종(망치형, 센터펀치형 단일·이중, 카드형)으로 시험한 결과에서도 강화유리는 모두 파괴됐지만, 접합유리는 표면에 금이 갈 뿐 깨지지 않았다. 차 문이 열리지 않아 창유리를 깨야 하는 상황에서 머리 받침대의 철제 막대나 비상탈출용 망치를 사용해도 접합유리를 뚫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소비자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자신의 차량에 접합유리가 장착됐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비자원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6.5%가 측면 창유리에 접합유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접합유리의 소음 저감 성능은 강조하면서도 비상탈출 시 파손이 어렵다는 점이나 구체적인 장착 위치에 대한 안내는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 접합유리 장착 여부와 위치는 제조사 공식 누리집의 카탈로그나 가격표를 직접 살펴봐야만 알 수 있었다.

다만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완성차 제조사에 창유리 안전정보 표시 개선, 측면 접합유리 선택권 강화, 출고 시 비상탈출용 망치 제공 등을 권고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운전자들은 차량 내 비상탈출 도구를 미리 비치하고 강화유리가 장착된 창문 위치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사들이 이번 권고를 실제로 수용해 정보 제공을 개선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