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협약은 그동안 신뢰성, 보존, 역량 강화, 소통, 지역사회 등 다섯 가지 전략 목표, 이른바 '5C'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어떤 유산을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지키며, 누가 지킬 힘을 갖추고, 어떻게 알리고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부산 선언은 여기에 협력(Collaboration)을 더해 여섯 번째 축을 만들었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우크라이나,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유산이 잇따라 위험 목록에 오르고 당사국 간 상호 비난이 오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프레아 비히어 사원처럼 한때 협력의 상징이었던 유산이 갈등의 자리가 된 사례도 나왔다. 세계유산협약이 갈등 해결의 도구로 여겨져 왔지만, 정작 위원회 회의장은 전 세계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부산 선언이 주목하는 협력은 무력 분쟁, 기후변화, 개발 압력 등 세계유산을 둘러싼 여러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협약 제4조는 각국이 자국 영토 안 유산을 지킬 1차적 책임을 지지만, 동시에 국제적 원조와 협력을 최대한 얻어 최선을 다하라고 규정한다. 책임은 각자의 몫이되 그 책임을 감당하는 힘은 함께 만든다는 원칙이다. 부산 선언은 이 원칙을 갈등이 일상이 된 오늘의 언어로 다시 꺼내 놓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집트 누비아 유적 보호 운동에 기념우표 판매 대금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아스완하이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기에 놓인 아부심벨 신전을 구하기 위해 50개국이 넘는 나라가 힘을 모은 이 운동은, 한 나라 영토 안 유산을 인류가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준 사례였다. 세계유산협약은 이 경험 위에 세워졌고, 대한민국은 1988년 협약 가입 이전부터 이 인연을 이어왔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전 세계 갈등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보여준 동시에, 협력이 얼마나 절실한지 확인시켜 준 회의였다. 부산 선언을 이끌어낸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유산 분야에서 협력을 넓히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