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20일 문화칼럼을 통해 “지금의 학교는 산업 시대의 고안품”이라며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을 높이 평가하는 구조가 AI 시대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일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가장 빠르게 줄어들 직무는 우편 사무원, 은행 창구 직원, 데이터 입력원, 출납원, 행정 비서 등 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직무들이다. 반면 수요가 급증하는 역량은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평생학습 등이다. 분석적 사고는 기업 10곳 중 7곳이 필수로 꼽았다.

박 의장은 “이런 자질들은 산업 시대 학교가 체계적으로 무시해 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탠퍼드대 연구에서도 생성형 AI 확산 이후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22~25세 신입 고용이 약 16% 줄어든 반면 숙련 인력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 연구진은 거대언어모델(LLM)이 학교가 주입하는 ‘책상 위 지식’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으로 질문하는 능력, 비판적 검증 능력, 맥락 통합 능력, 신체와 경험 기반 학습,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 협업과 소통을 꼽았다. 하지만 이런 역량은 현행 입시 교육에서 거의 훈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교실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2021년 상대평가 도입, 2024년 중등 계열분리 폐지, 2023년 중간고사 폐지 등 과감한 교육 개혁을 단행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 사교육 지출은 2018년 14억 싱가포르달러에서 2023년 18억 달러로 30% 늘었다. 학력이 좋은 일자리와 지위로 가는 관문으로 남아 있고, 떨어질 때 받쳐줄 안전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강한 학력-서열 배분과 약한 안전망이 중첩할 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며 “떨어지면 절벽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AI가 이미 더 잘하는 표준답으로 회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교육을 진짜로 바꾸려면 삶의 결과를 학력 순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안전망은 복지가 아니라 AI 시대 역량 형성의 인프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