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의 특별한 기억, 이제 고래 문화와 함께 맛본다

장생포의 고래 문화, 시민들을 위한 무료 개방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문화와 역사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과거 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이제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여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장생포, 고래의 역사와 함께 숨 쉬다**

장생포는 예로부터 고래의 중요한 서식지이자 포경 산업의 중심지였다.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가 이루어졌으며, 깊은 수심과 풍부한 먹거리는 고래들에게 최적의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장생포 앞바다는 새우를 비롯한 풍부한 해양 생물의 보고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고래들의 주요 이동 경로가 되었다. 특히 ‘귀신고래’는 장생포의 단골손님이었다.

1970~80년대 장생포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며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하류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영양분 덕분에 어업이 크게 번성했다. 수출입 선박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가 즐비할 정도로 활기찬 산업 현장이었다. 하지만 1993년 세창냉동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냉동 창고는 주인을 잃고 방치되었다.

**폐허에서 문화 공간으로, 장생포문화창고의 재탄생**

버려진 냉동 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로 재탄생한 이곳은 총 6층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장생포문화창고에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등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특별 전시관, 두 개의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까지 마련되어 있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온 가족이 즐기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이라는 이름의 항공 체험을 통해 어린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행기 모형의 에어바운스 프로그램은 8월 24일까지 운영된다. 또한, 종이 고래 접기, 고래를 붙여 바다를 만드는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가슴 벅찬 감동,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 시대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는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웅장한 산수화, 생동감 넘치는 풍속화, 섬세한 인물화가 빛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우리의 전통 수묵화와 풍경화를 사계절에 맞춰 재구성한 미디어 아트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일깨우며 ‘고래문화재단’의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과거 산업의 흔적, 그리고 현재의 의미**

수십 년 된 냉동 창고 문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활용한 것은 의미 있는 업사이클링 사례다. 영하의 온도를 자랑하던 냉동 창고가 시민들의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특히,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의 근현대 산업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1980년대 온산국가산업단지의 제련소, 석유화학공장 등에서 배출된 중금속으로 인한 ‘온산병’과 같은 아픔도 겪었다. 상주하는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은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를 더욱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라진 산업, 남은 기억, 그리고 미래를 향한 준비**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금지된 이후,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이곳에서는 여전히 고래고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지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었다.

장생포의 고래 요리집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를 넘어선다. 사라진 산업과 생업, 포경선의 향수를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며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가 된다.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이곳에 녹아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장생포의 고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