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연령통합사회, 나이 잊고 함께 사는 도시 만들기

아이 울음소리는 줄고 어르신들의 숫자는 늘어나는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숫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세대를 따로 지원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연령통합사회’를 만들어갈 때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바로 도시와 동네의 공간, 그리고 정책과 서비스 전반에서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상호작용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연령통합사회란 어린이, 청년, 중장년, 어르신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시와 동네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복지 정책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환경 전체의 설계와 운영 방식의 변화를 통해 실현됩니다. 예를 들어, 청년 주택과 고령자 주거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단지 안에서 삶의 리듬을 나누는 구조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옆 벤치에서 어르신이 책을 읽고, 청년들이 지역 마을카페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연령통합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연령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 모든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는 동네 공간을 조성해야 합니다. 둘째,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교통과 서비스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셋째, 세대 간의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커뮤니티 설계가 중요합니다. 또한,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넘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구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 및 프로그램, 그리고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는 디자인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이미 해외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OECD는 ‘모든 세대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 Ages)’라는 정책 방향을 통해 도시 공간에서 세대 간 만남과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 세대를 잇는 공동체 공간 마련, 공공서비스 접근성 강화 등이 그 중요한 변화들입니다. 미국 테네시 주 녹스 카운티에 조성된 세대혼합형 놀이터와 같이,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배치는 연령통합사회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재 대통령 선거 공약 등에서 저출생 대응은 보육, 양육비, 주거 지원 중심으로, 고령사회 대응은 돌봄과 의료체계 강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분명 필요하지만, 여전히 세대별 지원을 나누어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세대를 따로 보는 방식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의 전환입니다. 연령에 따라 정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고 연결하는 정책의 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모두가 아이였으며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도시와 정책이 잊지 않아야 할 때입니다. 한쪽에서는 출산율 감소 통계가, 다른 한쪽에서는 고령 인구가 어린이를 앞질렀다는 뉴스가 이어집니다. 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나이와 세대를 가르는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전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대는 나눌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입니다. 이제는 세대를 잇는 도시, 나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연령통합사회를 상상하고 만들어나갈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