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래, 추억을 씹다! 장생포 고래문화창고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나보세요

울산 장생포에 가면 단순히 고래고기를 맛보는 것을 넘어, 사라진 산업과 과거의 추억을 음미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장생포문화창고입니다. 이곳은 과거 포경 산업으로 번성했던 장생포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현재는 시민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장생포, 고래의 땅에서 문화의 중심지로**

장생포는 수천 년 전부터 고래들이 모여들던 깊은 바다였습니다. 반구대암각화의 고래잡이 그림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래 뼈 유물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넓은 바다와 강 하류에서 풍부한 먹이가 유입되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장생포는 고래들의 보금자리이자, 1970년대에는 냉동창고가 즐비했던 활기 넘치는 산업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으로 장생포의 고래 산업은 명맥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폐허가 될 뻔했던 냉동창고는 울산 남구청이 2016년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총 6층 규모의 건물에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등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공간은 물론, 특별 전시관, 갤러리, 미디어아트 전시관까지 마련되어 있어 하루 종일 다채로운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체험**

장생포문화창고에서는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이라는 이름의 고래 캐릭터와 함께하는 항공 체험을 통해 나이를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비행기 모형 에어바운스를 타고 여행지에 도착하는 듯한 체험과 함께 종이 고래 접기, 고래 붙여 바다 만들기 등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 체험 프로그램은 오는 8월 24일까지 계속됩니다.

또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화가의 작품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일깨워줍니다. 화려한 서양화 위주의 미디어아트와는 달리, 한국 전통 수묵화와 풍경화를 계절과 풍속에 맞춰 재구성한 미디어아트는 시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특히, 2층에서 상설 전시되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의 근현대 산업 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쉼 없이 연기를 뿜어내던 굴뚝과 중화학공업의 집약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울산의 역사를 마주하며, 부모 세대들은 자신들의 삶과 겹쳐지는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애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상주하는 해설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애도하고, 현재를 즐기고, 내일을 준비하는 공간**

장생포문화창고는 과거 냉동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활용하는 등 업사이클링의 좋은 사례를 보여줍니다. 수십 년 된 냉동 창고 문이 시민들의 공공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에서는 사라진 포경 산업의 역사를 되새기며 추억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고래고기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사라진 생업과 산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은 의례와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지만,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12만 원짜리 ‘모둠수육’은 육고기와 흡사한 외관과 붉은 빛깔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맛을 자랑합니다. 특히 ‘우네’와 ‘오배기’와 같은 고급 부위는 고래 특유의 맛과 식감을 극대화하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 그 이상입니다. 이곳은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을 담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우리에게 과거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