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나도 혜택받을 수 있다!” 생태계, 정책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해가 지면 으스스한 분위기로 변해버리는 원도심이나, 텅 빈 혁신도시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의 단적인 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의 ‘생태계’를 번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생태계 번성을 위한 세 가지 핵심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종 다양성’입니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며 생태계 전체를 지탱합니다. 먹이사슬을 통해 연결되고, 서로의 번식을 돕기도 하며, 죽은 생명체를 분해하고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종 다양성이 무너졌을 때 생태계가 얼마나 재앙적인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단일 품종의 감자에만 의존하고 있었는데, 감자역병이 돌면서 1845년부터 1852년까지 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입니다. 생태계는 태양에너지에서 시작해 식물을 거쳐 동물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 흐름을 통해 유지됩니다. 또한, 물질 역시 끊임없이 순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쓰러진 나무는 곰팡이와 버섯에 의해 큰 조각으로 분해되고, 이어서 세균이 더 잘게 부수어 토양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순환할 때 비로소 생태계는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이 중요합니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쉽습니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는 생태계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근친교배 우울증’ 또는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폐쇄된 가문 내에서 반복적인 짝짓기가 어떤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방 도시를 활성화하겠다며 텅 빈 들판에 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정작 그곳에는 젊은 부부들이 배우자의 일자리가 없어 이주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지방 도시마다 앞다투어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인구는 늘지 않고, 결과적으로 원도심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 50km도 안 되는 거리지만, 지역 청년들은 마음의 거리가 500km라고 말합니다.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방을 구할 바에야 서울로 가겠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통근 전철’이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번번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늘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뒤처지게 된 이유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산업의 생태계로 살펴보면 명확해집니다. 파운드리 산업은 칩 설계(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지적 재산권) 기업, 파운드리 자체, 그리고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생태계로 구성됩니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설계를 하면, 디자인 스튜디오는 이를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게 다듬습니다. USB 포트와 같은 일반적인 부품은 매번 새로 설계하기보다는 IP 회사로부터 구매하는데, 이때 해당 파운드리에서 이미 검증된 IP여야 즉시 사용 가능합니다. 칩 생산 후에는 패키징과 후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선폭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때, 칩을 수직으로 쌓거나 수평으로 붙이는 기술이 중요해지며, 이 패키징 기술은 점점 더 첨단화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모든 단계에서 TSMC의 생태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습니다. IP 파트너 수가 10배나 적거나, 패키징 기술에서는 10년이나 뒤처져 있는 상황입니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삼성전자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생태계를 함께 번성시켰어야 했습니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각기 고유한 생태계 속에서 돌아갑니다. 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가 지면 귀신 나올 것 같은 원도심, 텅 빈 혁신도시를 만드는 정책은 생태계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