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미국 여권, 20년 만에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신뢰 시대 열리나”

이제 미국 여권 소지자도 세계를 누비는 데 이전만큼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헨리 여권지수가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 상위 10위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부동의 1위를 자랑했던 미국 여권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전 세계 227개 목적지 중 미국 여권으로 무비자 또는 도착 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순위 하락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가 아닌, 국제 사회에서 ‘힘’보다는 ‘신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과거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여권의 힘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투명한 행정, 경제적 신뢰, 글로벌 협약 이행력 등이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아시아 국가들은 조용히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넓히고 있다. 싱가포르, 한국, 일본이 헨리 여권지수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이동성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들 국가의 여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강력한 국력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와의 긍정적인 관계 구축과 신뢰 기반 외교 덕분이다.

한편, 미국의 최근 경향은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미국 고립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외향적이지 않은 외교 정책은 브라질, 베트남,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미국을 무비자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이는 곧 이동성의 쇠퇴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문을 닫는 나라’는 결국 ‘닫힌 문 앞에 서게 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인들 역시 ‘제2의 여권’을 찾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인의 투자 이민 신청 건수가 전년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메리칸 드림’이 ‘글로벌 드림’으로 확장되는 현상이며, 국적이 더 이상 출생의 결과가 아닌 전략적 선택의 중요한 자산이 되는 시대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헨리 여권지수의 변화는 단순히 누가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누가 더 많은 나라와 신뢰를 공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을 여는 힘’이 곧 진정한 국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권은 이제 국가의 신용 등급이자 외교적 신뢰를 증명하는 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