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는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온 어린 단종이 등장한다. 삶의 의지를 잃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단종에게 마을 사람들은 끈질기게 밥을 챙겨준다. 밥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듯 기어이 숟가락을 들게 만드는 모습은, 권력 다툼의 비극을 넘어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이다.
정의 사전적 의미는 무언가를 접하며 느끼는 마음이지만, 한국인에게 정은 사람 사이에서 훨씬 깊은 의미를 갖는다. 오랜 시간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쌓이는 감정이다. 이웃의 건강을 염려하고 집안 사정을 헤아리며, 새로 만든 반찬을 나누는 모든 행동이 정에서 비롯된다. 정은 한국인에게 하나의 생활방식이나 다름없다.
이런 문화는 외국인에게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툰 한국말로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목적지까지 동행해 주거나, 식당에서 반찬을 비용 없이 더 내주는 모습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로 꼽힌다. 시장에서 덤을 얹어주는 풍경이나, 식당 옆자리의 군인이 아들 같다며 밥값을 대신 내주는 일화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이 때로는 지나친 관심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초면에 나이를 묻거나 옷차림을 걱정하는 말이 사적인 참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상대를 ‘남’이 아닌 ‘우리’로 여기며 가족처럼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논리나 규칙을 넘어선 한국인 특유의 돌봄 방식인 셈이다.
한국인에게 유독 정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낸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서로의 일을 돕는 ‘품앗이’나 ‘두레’ 같은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부족한 자원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이런 공동체 의식은 시간이 흘러 하나의 문화이자 가치로 자리 잡았다. 개인주의가 중요해진 오늘날에도 정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따뜻한 힘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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