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군의 깊은 산골 마을. 1929년생 박종례 할머니는 달력에 표시해 둔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 의사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할머니의 맥을 짚고 혈압을 재는 동안, 사회복지사는 필요한 다른 서비스는 없는지 살핀다. 병원에서는 5분이면 끝날 진료가 집에서는 30분 넘게 이어진다. 건강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돌보는 시간이다.
이것이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정책의 모습이다. 횡성군처럼 노인 인구 비율이 높고 병원이 먼 지역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병원은 ‘가고 싶은 곳’이 아닌 ‘가기 어려운 곳’이다. 통합돌봄은 이런 현실에서 출발했다. 환자가 병원으로 오기 힘들다면, 의료와 돌봄 서비스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의 전환이다.
기존 복지 제도와 가장 큰 차이점은 ‘연결’에 있다. 이전에는 식사 지원, 이동 지원, 의료 서비스가 모두 따로 운영됐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각 기관에 알아보고 일일이 신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통합돌봄은 전문가들이 먼저 한자리에 모여 한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논의한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함께 그 사람에게 꼭 맞는 돌봄 계획을 세워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환자뿐 아니라 곁을 지키는 가족의 부담도 크게 덜어준다. 집에서 거동이 불가능한 어머니를 돌보는 딸 신영희 씨는 방문 의료가 시작된 뒤 마음이 훨씬 놓였다고 말한다. 가족이 할 수 없는 의료적 판단을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와서 도와주기 때문이다. 실제 시범사업에 참여한 보호자 10명 중 7명은 돌봄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물론 아직 해결할 과제도 남아있다. 농어촌 지역은 집 사이 거리가 멀어 의료진이 하루에 많은 가구를 방문하기 어렵다. 의료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앞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돌봄은 우리 사회의 돌봄 방식이 병원과 시설 중심에서 점차 ‘살던 집’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파도 내가 살던 익숙한 공간에서 존엄하게 지낼 수 있도록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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