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AI 똑똑하게 쓰는 법”, 정부도 이제 ‘맥락’과 ‘완전한 문장’으로 준비해야

인공지능(AI)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AI의 지능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편화된 정보만 제공하는 조직과 모든 맥락과 참고 자료를 함께 공유하는 조직 간의 차이가 AI 성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충분한 데이터 확보가 AI의 발전을 좌우하며, 데이터가 부족하면 ‘과적합’ 현상, 즉 적은 데이터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제대로 된 주사위라면 여러 번 굴려야 확률이 수렴하듯, AI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데이터 관리 실태가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데이터가 D 드라이브에 저장되어 수명 종료와 함께 포맷될 경우, 수많은 맥락과 암묵지, 과정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 미래에 활용될 공무원들의 AI 역시 제대로 된 학습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고서 작성 방식도 AI 활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높은 직급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짧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1페이지 요약을 선호하며, 공무원들은 자간, 장평 조절과 개조식, ‘음슴체’ 문체에 능숙한 것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존은 ‘6 페이저’라는 회의 규칙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6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작성하고 공유한다. 이 메모는 완전한 문장으로 서술체로 작성되며, 회의 참석자들은 첫 30분간 이 메모를 읽는 데 할애한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조차 이 규칙을 따른다.

‘6 페이저’는 도입부, 목표, 원칙, 사업 현황, 교훈, 전략적 우선순위, 부록으로 구성되어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파워포인트(PPT)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PPT의 불릿 포인트 뒤에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이조스는 “서술 구조를 가진 완전한 문장을 써야 할 때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어렵다”고 강조하며, “좋은 4페이지 메모를 쓰는 것이 20페이지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지만, 이는 더 나은 사고와 중요한 것에 대한 이해를 강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업 시스템 또한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클라우드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위키 엔진 기반의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대부분의 게시판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여 모든 참가자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쌓인 논의 과정과 자료는 문서 공유를 넘어 ‘맥락’ 자체를 공유하게 만든다.

클라우드와 공개 게시판을 통해 모든 자료와 참고 자료가 조직 내에 축적되면 AI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파편화된 문장만 제공하는 조직과 맥락, 참고 자료까지 공유하는 조직 간의 AI 지능 격차는 명백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1페이지 요약은 가능한 한 지양해야 한다. 보고서를 읽는 시간과 전체 업무 효율을 고려할 때 ‘6 페이저’ 방식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이는 총소유비용(TCO)을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저렴해 보여도 결과적으로 비싼 잉크젯 프린터와 같다는 지적이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보고서는 반드시 서술체로 작성해야 한다. ‘음슴체’는 엉성한 사고를 숨기기 쉬우나, 서술체는 더 나은 사고와 중요한 것에 대한 이해를 강제한다. 무엇보다도 AI 학습과 맥락 공유에 백만 배 낫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훨씬 더 뛰어난 AI를 사용할 자격이 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으며,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