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초고령사회, 집에서 존엄하게 사는 법: 에이지테크가 곧 생활 인프라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72년에는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인 47.7%가 고령자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고령자들이 익숙한 집과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그리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정책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의 자립과 존엄 실현을 위한 건축도시공간 기반의 ‘생활 인프라’로서 에이지테크(Age-Tech)를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고령자 본인이, 혹은 그 가족이 에이지테크를 통해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사회 지속거주(Aging in Place)’의 실현이다. 2023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87.2%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거주하길 원한다. 건강이 악화하더라도 익숙한 공간에서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하다. 이는 고령자 삶의 질에 있어 지역사회에서의 지속적인 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바람과 달리 녹록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복지 시스템은 주로 저소득층과 시설 중심, 그리고 부처별로 분절된 서비스 제공 방식으로 인해 중산층이나 다양한 건강 상태를 가진 고령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체 고령 인구의 0.22%만이 노인복지시설에 수용 가능하며, 주택, 돌봄, 의료, 복지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연계되지 못해 고령자의 실제 필요에 따른 대응이 어렵다. 특히 중소득 또는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자들은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에이지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에이지테크는 ‘노화(Aging)’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고령자의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술을 포괄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고령자의 안전, 건강, 사회 참여, 이동, 정서적 지원 등 일상 전반을 돕는다. 예를 들어, 낙상 감지 센서, 원격 건강 모니터링, 음성 인식 조명, 자동 온도 조절 시스템, AI 돌봄 로봇 등은 고령자가 익숙한 집에서 더욱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미 국내 한 통신사업체는 통신 빅데이터와 전력 사용 패턴을 분석하여 독거노인의 고독사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저소득 고령자 비율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등을 ‘자연 은퇴 노인 주거 공동체(NORC)’로 지정하고, 커뮤니티 기반의 복지·의료·생활 서비스를 결합한 고령 친화 주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단지에는 센서 기반 스마트홈, 원격 건강 모니터링, AI 안부 확인 서비스 등 에이지테크가 접목되어 고령자의 안전과 건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고독사 예방과 같은 사회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학과 연계된 시니어 레지던스에 온라인 평생교육, 사회 참여 플랫폼, 원격 의료 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 에이지테크를 적용하여 고령자의 사회적 연결, 평생 학습, 건강 관리를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에이지테크 연계 고령 친화 주거 복지 강화는 고령자의 자립성 및 존엄성 강화, 돌봄 인력 부담 완화, 사회적 연결 및 고독사 예방, 맞춤형 건강 관리 및 의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미국은퇴자협회(AARP) 등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에이지테크가 초고령사회 대응과 고령자의 ‘지역사회 지속거주’ 의지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강조되지만, 실제 고령자의 주거와 생활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 단위의 실증과 리빙랩의 확대이다. 에이지테크는 실제 주거 공간, 아파트 단지, 마을, 지역사회 등 다양한 공간 단위에서 고령자, 가족, 돌봄 인력 등이 직접 참여하는 ‘리빙랩(Living Lab)’ 방식의 실증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기술의 사용성, 수용성, 효과성을 검증하고 현장 수요에 맞는 맞춤형 개선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실증 사업은 대학, 기업, 지자체, 정부 출연 연구기관, 복지 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오픈 플랫폼 및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며, 우수 성과는 공공 조달 등 혁신적인 확산 경로와 연계되어야 한다.

더불어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고령자의 일상생활 지원은 개별 주택이나 시설 중심의 접근을 넘어, 보건, 복지, 의료, 주거, 교통, 여가 등 다양한 서비스가 지역사회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에이지테크를 활용하여 일상 지원 서비스를 연계하고자 해도, 지역사회 내 통합된 서비스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에이지테크의 활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법·제도적 기반 위에, 지자체 주도의 실행력과 민간의 혁신 역량이 결합된 단계적이고 포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에이지테크는 단순히 기술 개발 차원을 넘어, 고령자의 자립과 존엄을 실현하는 건축도시공간 기반의 ‘생활 인프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술 개발(산업통상자원부), 생활 환경 조성(국토교통부), 의료·돌봄 서비스 지원(보건복지부) 등 부처별·개별적으로 추진되는 정책과 사업들이 공간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계·통합될 필요가 있다. 종합 계획 수립, 복합 사업 추진, 법·제도 연계 강화 등 거버넌스 혁신 또한 요구되는 상황이다.

어르신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연계 및 공간 단위 지원을 통해, 에이지테크가 어르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독립과 존엄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범부처·민관 협력과 사회 전체의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되는 혁신적인 노력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5월 26일(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주관한 ‘에이지테크(Age-Tech) 민관 얼라이언스 착수회의’에서도 이러한 중요성이 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