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업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탄소감축은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전기차나 철강과 같은 일부 품목에서 시작된 기후-통상 연계는 앞으로 더 다양한 제품과 소재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제협력이 약화된 상황 속에서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기후 대응 정책과 통상 정책을 연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수출 제품의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상에 기후가 연계되면서 원산지 증명에 탄소 배출량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시행된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보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시 자동차 부품 생산 과정과 완성차 조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적을수록 더 유리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상대적인 탈탄소 속도가 곧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단순히 규제를 피하는 것을 넘어, 탄소감축을 통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기후-통상 연계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기후 기술 확보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초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 전환 투자 전략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 5월, 전 세계 29개국 투자 회사 및 에너지 기업 고위 경영진 5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향후 18개월 내 투자 분야로 ‘탈탄소/저탄소 기술’을 꼽은 응답이 42%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23년 9월, 총 45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가 지난 1년간 에너지 전환 전략을 기존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집중했다고 답했다. 이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 투자를 지속하거나 확대할 계획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에는 세 가지 주요 동인이 있다. 첫째, 기술 가격 하락과 확산의 선순환이다. 태양광 설비 가격이 지난 10년간 1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보급이 확산되고, 이는 다시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더욱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2022년 전 세계 신규 발전소 설치 용량의 5분의 4가 재생에너지였고, 2023년에는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설치 용량 510GW 중 태양광이 4분의 3을 차지하는 배경이다.
둘째, 기후-통상 연계 가시화에서 나타나는 산업 정책 확산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국가 간 경쟁 심화 속에서 특정 산업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EU 탄소중립산업법(NZIA) 등 정부 지원은 탄소중립의 경제성을 높여 자국 내 관련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강력한 의지다. 세계 최초로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와 같은 사례는 친환경 해운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적인 투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한국은 전력망이 다른 국가와 연결되지 않아 고립되어 있고, 전력 시장 개방도 유연하지 못하며, 자연자원이 제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로벌 기술 가격 하락이 한국 기업에게 충분히 와 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수출 지장을 최소화하려는 방어적 대응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탄소중립 투자 활성화로의 연계에는 다소 둔감한 편이다. ‘first mover’보다는 ‘fast follower’에 익숙한 한국 기업들에게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탄소중립 전략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단기 감축 규제 및 기술 지원에 대한 정책 시그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때 데이터 기반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돕는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재 210만 건 이상의 기후 기술 특허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이나 전문가 인터뷰 등을 보완하는 특허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활용하면, 유망 분야 선정, 핵심 기술 파악, 접목 기술 검색, 기술 벤치마킹, M&A 대상 탐색, 기술 가치 평가 등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적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후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 및 투자 의사결정 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술 중 35%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거나 시장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술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전기화, 에너지 효율, 수소, 탄소 제거 등의 기후 기술 중 1/3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여전히 시장 선점의 기회가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2023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2배 개선하는 등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24년까지 2030년 국가 감축 목표 달성 경과를 포함한 격년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2025년까지는 2030년 국가 감축 목표(40%)보다 더 야심 찬 2035년 국가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약속 이행을 위해 한국 정부는 2024년 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년~2030년) 동안 국내 다배출 기업에 대한 배출 기준과 허용량을 정하는 기본계획 확정 및 할당 계획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수립해야 하는 국가 법정 계획들은 COP28 결정문 및 UN에 제출할 국가 감축 목표와의 정합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합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요구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한국 기업은 이러한 기후-통상 연계 가시화, 기후 기술 경쟁 가속화의 동인, 한국의 특수성과 기업의 기후 기술 확보 방안을 면밀히 파악하고, COP28 결과에 따른 국내외 후속 조치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전략을 갱신해야 한다. 또한, 국내외 정책 및 전략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모호한 정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부 및 입법 담당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고객사와 공급망 파트너와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점이다.
더 많은 이야기
혁신 중소·벤처기업, 투자받기 쉬워진다… 정부-금융감독원, 협력 체계 구축
벤처천억 기업 985개 달성, 나도 억대 매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2025년부터 한국 경제 회복, 나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