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에이지테크, 어르신이 집과 지역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생활 인프라’로

이제 어르신도 익숙한 집과 동네에서 안전하고 당당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핵심 과제인 주거 환경 혁신을 위해 ‘에이지테크(Age-Tech)’가 단순 기술을 넘어, 고령자의 자립과 존엄을 실현하는 ‘생활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72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7%가 고령자가 될 전망이다. 1차,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기에 접어들면서, 고령자의 주거 환경을 혁신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2023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87.2%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하길 원하며, 건강이 나빠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익숙한 공간에서의 삶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지역사회 지속거주(Aging in Place)’의 가치가 고령자 삶의 질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복지 시스템은 저소득층과 시설 중심이라 중산층이나 다양한 건강 상태를 가진 고령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부족하다. 노인복지시설은 전체 고령 인구의 0.22%만 수용 가능하며, 주택과 돌봄, 의료, 복지 서비스가 부처별로 나뉘어 제공되어 고령자의 실제 필요에 따른 통합적인 지원이 어렵다. 특히 중산층이면서도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자들은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대안으로 ‘에이지테크’가 떠오르고 있다. 에이지테크는 ‘노화(Aging)’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고령자가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기술을 의미한다. 에이지테크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고령자의 안전, 건강, 사회 참여, 이동, 정서적 지원 등 일상생활 전반을 돕는다. 예를 들어, 낙상 감지 센서, 원격 건강 모니터링, 음성 인식 조명, 자동 온도 조절, AI 돌봄 로봇 등은 고령자가 익숙한 집에서 더욱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실제로 국내 한 통신사업체는 통신 빅데이터와 전력 사용 패턴을 분석하여 어르신의 고독사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존 지역사회 내 저소득 고령자 비율이 높은 공공 임대주택 등을 ‘자연은퇴노인 주거공동체(NORC)’로 지정하고, 커뮤니티 기반의 복지·의료·생활 서비스를 결합한 고령 친화 주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는 센서 기반 스마트홈, 원격 건강 모니터링, AI 안부 확인 서비스 등 에이지테크가 적용되어 고령자의 안전과 건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고독사 예방 등 사회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학과 연계된 중·고소득 입주자를 위한 시니어 레지던스에 온라인 평생교육, 사회 참여 플랫폼, 원격 의료 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의 에이지테크가 적용되어, 고령자의 사회적 연결과 평생 학습, 건강 관리를 동시에 지원한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는 에이지테크를 활용한 고령 친화 주거 복지 강화가 고령자의 자립성과 존엄성을 높이고, 돌봄 인력의 부담을 줄이며, 사회적 연결 및 고독사 예방, 맞춤형 건강 관리와 의료비 절감에 효과가 있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에이지테크가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확산되려면, 고령자의 실제 주거와 생활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공간 단위의 실증과 리빙랩(Living Lab) 확대가 필수적이다. 에이지테크는 실제 주거 공간, 아파트 단지, 마을, 지역사회 등 다양한 공간 단위에서 고령자, 가족, 돌봄 인력 등이 직접 참여하는 리빙랩 방식으로 실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의 사용성, 수용성, 효과성을 검증하고 현장 수요에 맞는 맞춤형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실증 사업은 대학, 기업, 지자체, 정부 출연 연구기관, 복지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오픈 플랫폼과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며, 우수 성과는 공공 조달 등 혁신적인 확산 경로와 연결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 지원 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고령자의 일상생활 지원은 개별 주택이나 시설 중심을 넘어, 보건, 복지, 의료, 주거, 교통, 여가 등 다양한 서비스가 지역사회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에이지테크를 활용해 일상 지원 서비스를 연계하고자 해도, 정작 지역사회 내 연계될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에이지테크의 활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법·제도적 기반 위에, 지자체 주도의 실행력과 민간의 혁신 역량이 결합된 단계적이고 포용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에이지테크 기반의 고령자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 환경 조성은 기술 개발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생활 환경 조성 국토교통부, 의료·돌봄 서비스 지원 보건복지부 등 부처별로 개별 추진되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주택, 복지, 교통, 의료 등 관련 정책과 사업이 공간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계·통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종합 계획 수립, 복합 사업 추진, 법·제도 연계 강화 등 거버넌스 혁신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결국 에이지테크는 단순 기술 개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령자의 자립과 존엄을 실현하는 건축 도시 공간 기반의 ‘생활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어르신이 익숙한 집과 지역에서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정책의 핵심이다.

에이지테크의 실증은 반드시 어르신의 실제 생활 공간, 즉 공간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리빙랩 등 현장 기반의 실증 사업을 확대하고, 지역사회 통합 지원 체계와 연계해야 한다. 어르신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연계와 공간 단위 지원을 통해, 에이지테크가 어르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독립과 존엄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단일 부처나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범부처·민관 협력과 사회 전체의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