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125만 명, 빚의 굴레 벗고 인간다운 삶 되찾는다

이제 125만 명이 7년 이상 갚지 못한 빚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다. 새 정부는 장기 연체채무자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고, 국회는 이를 위한 예산 4000억 원을 포함하여 새출발기금 지원 확대 예산 7000억 원을 전례 없는 속도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빚의 짐에 짓눌려왔던 많은 국민이 경제 시스템 안으로 다시 들어와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빚을 없애주는 것을 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들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리셋 장치’로서 기능한다. 현재 11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7년 넘게 빚을 갚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5000만 원 이하의 채무자이다. 상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들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정상적인 금융 거래는 물론, 취업이나 창업의 기회마저 차단된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이들이 사회의 비공식적 영역으로 밀려나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개인의 책임만을 묻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장기 연체채무를 금융회사로부터 일괄 매입하여 채무를 소각하는 한편,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과 취약 소상공인에 대한 채무조정 감면 폭을 최대 90%까지 강화하는 등 부채 정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 정책을 통해 약 125만 명이 빚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경제 활동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빚을 내고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정의로운 사회는 개인의 자유 보장을 넘어 공동체의 가치와 미덕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한계 상황에 놓인 채무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공동체의 회복 가능성에 기반을 둔 정의 실현이며, 구조적 불평등과 경제적 고립을 완화하여 사람들을 다시 생산적인 활동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은 장기 연체채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대응해 왔다. 미국은 ‘챕터 7’ 개인파산 제도를 통해 일정 기준 이하 채무자의 잔여 채무를 소각하고, 파산 면책 이후 금융 활동 재개를 지원한다. 독일은 ‘개인파산 및 채무조정제도’를 통해 일정 기간 변제 노력을 거친 경우 잔여 채무를 탕감해주며, 이는 나라 전체의 생산성과 소비를 높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영국은 ‘부채 구제 명령(DRO)’을 통해 일정 기준 이하 소득 및 자산 보유 채무자의 채무를 법적 절차에 따라 소각하는데, 고의적인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신청 자격 심사가 엄격하다.

이처럼 세계는 정부의 정책 지원을 통한 장기 연체자의 채무 조정을 인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당한 채무 조정을 통해 경제에 복귀한 인력이 사회 전체 생산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의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단순한 채무 감면에 그치지 않고 엄격한 선별과 책임 있는 기회 제공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원 대상자는 금융 정보, 소득, 부동산 보유 내역 등을 면밀히 확인하고, 재산 은닉 시에는 처벌 조항을 명확히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채무 조정과 함께 일정 기간 내 취업 활동, 직업 훈련, 금융 교육 이수 등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책임 있는 사회 복귀를 유도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우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것이 정부의 정당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7년 이상 지속되는 연체는 ‘시장 실패’를 의미하며,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정당하다. 개인의 경제적 실패가 공동체 전체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장기 연체채무자의 경제 활동 복귀는 개인 구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복원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채무자의 삶을 재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와, 끝없이 낙인을 찍으며 그들을 배제하는 사회 중 어떤 사회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가.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미래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