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25일

쓰레기 소각장, 텅 빈 벙커가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부천아트벙커B39에서 만나는 특별한 이야기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이 이제는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습니다. 마치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 예술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말이죠.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견뎌낸 결과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어떤 도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는 경험, 미디어, 혹은 예술 작품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저의 아버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누이가 있는 마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지금은 ‘마산’이라는 이름이 ‘창원시’에 통합되어 사라졌지만, 40년 전만 해도 마산은 활기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마산어시장은 사계절 내내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했고,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은 도시를 든든하게 지탱했습니다.

제 큰집 사촌 언니는 고향 함안을 떠나 한일그룹이 세운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언니의 얼굴은 기름때와 먼지로 늘 파랬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언니처럼 ‘산업체’ 역군으로 전국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겠습니까. 오직 잘 살아보겠다는 꿈 하나로 상경한 수많은 ‘공돌이’, ‘공순이’들이 있었습니다.

수도 서울의 강력한 배후 도시였던 부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아남산업, 삼성전자 반도체, 로켓트보일러공장 등 2,0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공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전국 인구 증가율이 27.7%였던 반면, 부천은 무려 102.9%를 기록했습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수도권 인근의 안양과 수원 인구가 각각 56%, 48% 증가할 때, 부천의 인구는 126%로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서울 개발에 밀려왔든,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의 보금자리였든, 부천은 내 집 한 칸 마련하려는 서민들의 땅이었습니다. 최소한 50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서울은 포화 상태였고, 부천은 그 넘치는 사람들을 품었습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부천 원미동을 전국적으로 알렸습니다.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원미동은 소설을 통해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 슬픔 속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땅, 그렇게 원미동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밀레니엄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지만 ‘원미동 사람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읽히는 것을 보면 아련한 감정이 듭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부천 원미동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로컬100’에 선정된 부천아트벙커B39가 있습니다. 생소한 이름의 부천아트벙커B39는 약 33년 전,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환경부 지침에 따라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이 설치되면서 건축 허가와 착공이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5월부터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삼정동 소각장은 1997년, 환경부의 조사 결과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의 폐쇄 운동 끝에,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폐기물 소각 기능이 이전 및 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쓰레기 소각 기능이 다한 폐건물은 곧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도시에도 건물에도 운명과 명운이 있는 듯합니다. 이곳 삼정동 폐소각장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2018년 복합 문화 예술 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거대한 굴뚝과 쓰레기 소각로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깔끔하고 단아한 건물 외관은 이곳이 쓰레기를 태우던 곳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게 합니다. 과거 소각로는 주택 설계의 ‘중정’을 모티브로 한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변신하여, 하늘과 채광을 가득 담아 다양한 각도와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에어갤러리는 과거 쓰레기가 마지막으로 정리되던 공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회색빛 공간이 압도합니다. 이곳은 과거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BANKER)로,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공간입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높이 39m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거대한 상자는 모든 쓰레기들이 마지막으로 거쳐 갔던 관문이자 ‘관’이었습니다. 벙커의 한쪽 벽면에는 여닫을 수 있는 육중한 쇠문 세 개가 눈길을 끕니다. 벙커와 연결된 공간을 따라가면 쓰레기 반입실이 나옵니다. 과거 쓰레기 수거 트럭이 도심의 생활 쓰레기를 쏟아내던 이곳은 이제 멀티미디어홀(MMH)로 활용되며 놀라운 변신을 이루었습니다.

소각동 2층과 3층 역시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거대한 설비 공간들은 과거의 흔적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펌프실, 배기가스 처리장, 그리고 기존의 중앙 청소실을 리모델링한 아카이빙실까지.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에서는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운동의 전개 과정, 그리고 소각장이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어떻게 변모하게 되었는지 그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본 어떤 건물이나 전시보다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건물을 나서며 다시 한번 거대한 벽화를 마주합니다. 2021년 아트벙커 공공 미술 프로젝트 ‘숲이 그린 이야기’는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의 작품으로, 소각장을 상징하는 굴뚝 모양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소리와 색으로 가득한 숲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거리를 나서며 꽃과 나무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다시 부천 원미동, 정확히는 ‘조마루사거리’로 향합니다. 이제 조마루는 식당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원미동의 원래 이름은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의 ‘멀뫼'(멀뫼산)였고, 그 이전에는 조씨 일가 집성촌이라 ‘조종리’ 또는 ‘조마루’라고 불렸습니다. 이 사거리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청기와뼈다귀해장국’과 ‘조마루뼈다귀해장국’의 본점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감자탕은, 감자가 있든 없든 인천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다귀에서 유래했습니다. 미군에서 버려지는 뼈 중 살코기가 많은 등뼈가 유통되었고, 이 뼈 일부가 알감자를 닮았다 하여 감자탕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감자탕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식객 허영만 선생과 작가들이 자료를 뒤졌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자탕에 감자가 들었으면 감자탕, 없으면 뼈다귀해장국으로 불리며, 우리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만 원 한 장으로 소주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는 해장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축 및 발골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수입 돼지고기가 들어오면서, 뼈다귀에 붙은 살은 더욱 큼지막하고 풍성해져 뼈다귀해장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가격으로 우리의 곁을 지킵니다. “감자탕에 국산은 게임이 안 돼! 작아서 어디에 쓰냐? 쓸 수 없지. 수입산이 훨씬 크고 고기 양이 많아. 맛이야 내가 내는 거고 우리는 고기 큰 것만 들이면 되지. 그래야 손님들이 좋아하지!” 국산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장통에서 일찍이 배웠습니다.

오늘 제가 선택한 곳은 “1988년 부천시 원미동에서 창업 이래”라는 주인장의 인사말이 벽 한쪽에 걸려 있는 파란 지붕 가게입니다. 깍두기와 양파, 청양고추는 소위 ‘국룰’과도 같은 반찬이지만, 깍두기는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침이 뚝뚝 떨어질 만큼 시원하고 달큰합니다. 다소 텁텁한 등뼈 살점과 매콤한 뼈다귀해장국 국물을 씻어내기에 딱 좋은 맛입니다. 양파와 고추 역시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닌, 입맛을 돋울 정도로 적당합니다.

주문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뼈다귀해장국이 나왔습니다. 감자탕 소짜, 대짜로 주문해서 당면이나 감자 사리를 넣어 끓여 먹고 마지막에 밥까지 볶아 먹을 수도 있지만, 제 선택은 언제나 뚝배기입니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오는 해장국의, 입천장이 델 것처럼 화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깊은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뚝배기 앞에서 저는 언제나 흥분되고 경건한 마음을 느낍니다.

두툼한 뼈다귀가 무려 세 점, 푹 익힌 우거지와 밥 한 공기가 함께 나옵니다. 뼈다귀해장국을 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뼈다귀 살점을 하나하나 다 발라내 밥과 함께 말아 먹는 ‘선 작업파’와, 하나씩 손에 잡히는 대로 살을 발라 바로 먹는 ‘후자파’로 나뉩니다. 저는 철저하게 후자입니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던 고기 붙이를 꺼내 살을 발라 국물에 푹 적셔 먹으면, 소고기 스테이크가 부럽지 않습니다.

특히 이 집 국물은 다른 해장국과 달리 맑고 깨끗합니다. 입술에 착 달라붙는 기름진 국물이 아니라 제법 가볍고 산뜻한 맛이 있습니다. 가맹점을 경계하는 저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역시 편견은 깨지라고 존재하는 법입니다. 요즘 외국인들도 감자탕에 빠져들고 있다고 합니다. 감자탕에 얹어주는 깻잎 향과 들깨 향이 낯설 법도 하지만, 이것 또한 K-푸드의 매력임을 알아채고 기꺼이 이 맛있는 유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까요? 이 감자탕과 뼈다귀해장국이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은 이제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습니다. 마치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 예술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오래 견디고 볼 일입니다.

◆ 부천아트벙커B39

주소: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작로 53 (삼정동)

이용 시간: 10:00~17:00 (휴일: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주차: 가능 (요금 무료)

문의 및 안내: 032-321-3901

공식 누리집: http://artbunkerb39.org/ko/main/main.html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rtbunkerb39/

※ 프로그램 진행에 따라 휴관일이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누리집 확인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