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권의 국제적 위상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하락했다. 헨리 여권지수(Henley Passport Index)의 최신 발표에 따르면, 과거 부동의 1위를 자랑했던 미국 여권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전 세계 227개 목적지 중 180곳에만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여권 순위 하락의 주요 원인은 ‘입국 허용 변화’에 있다. 지난 4월, 브라질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시민의 비자 면제를 철회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중국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무비자 입국 대상국 명단에서 미국을 제외하면서 하락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파푸아뉴기니와 미얀마의 입국 정책 조정, 그리고 소말리아의 새로운 전자비자(eVisa) 시스템 도입 및 베트남의 미국 최신 무비자 입국 확대 대상 제외 등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글로벌 이동성과 소프트파워의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H. 케일린 회장은 “개방성과 협력을 수용하는 국가들은 앞서 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특권에 안주하는 국가들은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영국 여권 역시 사상 최저 순위로 떨어졌다. 한때 2015년 1위를 차지했던 영국 여권은 올해 7월 이후 두 계단 하락하여 6위에서 8위로 밀려났다.
미국 여권 소지자는 현재 180개 목적지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지만, 미국이 자국 입국을 비자 없이 허용하는 국가는 단 46개국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 199개국과 지역을 대상으로 사전 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하는 국적 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헨리 오픈니스 지수(Henley Openness Index)에서 77위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비자 면제 접근성’과 ‘입국 개방성’ 간의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준으로,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보다도 앞선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애니 포르자이머는 “미국의 후퇴는 정치적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의 정책은 내향적으로 변하고 있었고, 이러한 고립주의적 사고방식이 이제 미국 여권의 위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지난 10년간 헨리 여권지수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인 국가 중 하나이다. 2015년 94위였던 중국은 2025년 현재 64위로 올라섰으며,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목적지가 37곳 늘어났다.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도 중국은 눈에 띄게 상승하여 현재 65위에 올라 있으며, 76개국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을 포함한 일련의 조치는 중국의 ‘개방 확대 전략’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랜트손턴 차이나의 팀 클랫 박사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의 이동성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무역 갈등을 초래했지만, 중국의 전략적 개방은 자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반된 경로는 향후 전 세계의 경제 및 여행 질서를 재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여권의 위상 하락은 전례 없는 ‘대체 거주권(residence) 및 시민권(citizenship)’ 수요 급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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