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나도 혜택 받을 수 있다!’ 정책, 이제 ‘생태계’로 똑똑하게 따져보자

정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다. 만약 정책이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가짜 정책’이 될 수 있다. 마치 밤이 되면 사람이 살지 않아 으슥해지는 원도심이나, 배우자 없이 홀로 남겨진 듯 텅 빈 혁신도시처럼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생태계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먼저 ‘종 다양성’이다. 마치 숲속의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로 얽히고설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듯, 여러 다른 분야와 요소들이 복잡하게 연결될 때 생태계는 더욱 튼튼해진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서 단일 품종 감자에만 의존하다 감자역병으로 인해 100만 명이 굶어 죽었던 대기근은 종 다양성이 깨졌을 때 생태계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 필수적이다. 태양 에너지가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에너지 흐름처럼, 자연의 순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해야 생태계는 유지된다. 쓰러진 나무가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을 통해 토양으로 되돌아가는 과정 역시 물질의 순환을 보여준다. 이처럼 끊임없이 순환해야만 생태계는 살아 숨 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과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마치 폐쇄된 가문 내에서의 잦은 근친 결혼이 건강 문제를 야기하는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증후군’으로 상징되는 결과와 같다.

이러한 생태계 원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들은 종종 실패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지방 활성화를 위해 허허벌판에 혁신도시를 조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상황에서 남편이나 아내만 혁신도시로 발령 난다면, 배우자가 취업할 일자리가 없기에 그 가족은 지방으로 이주하기 어렵다. 이는 ‘못 가는 것’이지 ‘안 가는 것’이 아닌, 정책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지방 도시에 신도심을 무분별하게 건설하면, 기존의 원도심은 활기를 잃고 ‘유령도시’화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많은 지방 도시들이 이러한 ‘원도심 공동화’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 50km가 채 되지 않지만, 지역 청년들은 두 도시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500km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조차 어려운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간절히 바라는 ‘통근 전철’ 건설은 늘 타당성 검토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산업 현장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는 바로 이 ‘생태계’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칩 설계부터 디자인, IP(지적재산권), 패키징 및 후공정까지 다양한 단계의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 위에서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숫자나 패키징 기술 등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으며, 이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즉,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변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며,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함께 조성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많은 일들이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듯, 정책 역시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그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마치 밤이 되면 귀신이 나올까 두려운 원도심, 혹은 홀로 남겨진 듯한 혁신도시처럼 말이다. 만약 빌 클린턴 당시에게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