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7일

사라진 산업의 향수, 장생포 고래고기로 맛보다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맛보는 것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과거의 산업과 생업을 애도하고 회상하는 특별한 의례가 된다. 이제 장생포 고래요릿집에서 사라진 고래의 역사를 맛보며 도시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

장생포는 오랜 역사 동안 고래가 많이 잡히던 깊은 바다였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포경 산업이 번성했다. 선사시대부터 장생포 앞바다는 새우와 작은 물고기들이 풍부해 고래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귀신고래’가 단골손님으로 찾아올 정도로 고래가 드나들기 쉬운 깊은 바다는 큰 선박을 대기에도 유리했다. 어업이 성행하던 시절, 장생포는 엄청난 부를 자랑하며 수출입을 위한 대형 선박들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창고들도 즐비했다.

이러한 번영의 시대는 1973년 남양냉동이 들어서고 1993년 세창냉동으로 바뀌었으나, 10년도 채 되지 않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과거의 흔적만 남겼다. 폐허가 된 냉동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개관한 장생포문화창고는 현재 총 6층 규모로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갖춘 복합 예술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생포문화창고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을 갖추고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며, 특별 전시관, 갤러리, 미디어 아트 전시관 등 다채로운 공간으로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한다.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을 활용한 항공 체험, 종이 고래 접기, 고래 붙여 바다 만들기 등 어린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선사한다.

특히,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 산업 발전의 역사와 과정을 보여주며, 부모 세대에게는 깊은 애잔함을 선사한다.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였던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성장 과정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끈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로 인해 발생했던 ‘온산병’과 같은 중금속 중독 질환의 역사도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는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으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으로 100년도 안 된 영광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고래고기는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현재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에서는 주로 혼획된 밍크고래 등을 합법적으로 유통하며 고래고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로 인해 더욱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생포 고래요릿집에서 맛볼 수 있는 ‘모둠수육’은 12만 원으로,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한다. 특히 살코기는 쇠고기보다 붉은색을 띠며, 육회는 소고기와 흡사할 정도로 달콤하고 부드럽다. ‘일두백미’라 불리는 소 한 마리의 다양한 맛처럼, 고래 한 마리에서도 최소 12가지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고급 부위인 ‘우네’와 ‘오배기’는 고래 특유의 맛과 식감을 극대화하며,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때로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다른 부위는 꼬들꼬들한 생 조갯살 같은 독특한 식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과거의 산업과 공동체의 역사를 맛으로 되새기게 한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사라진 산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아 도시의 기억을 삼키고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특별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