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경청통합수석’ 신설로 대통령과 더 가까워진다, 이재명 정부의 소통 방식 변화

이제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쉬워진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경청통합수석’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에게 있어 소통의 핵심이 단순히 ‘말하기’가 아닌 ‘듣기’, 즉 ‘경청(敬聽)’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새 정부의 대통령실 조직도에는 ‘경청통합수석’이라는 이름이 새롭게 등장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부처와 달리 법 개정 없이도 조직 신설이 가능하여, 신임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개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과거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수석은 ‘홍보수석’이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소통수석’으로 명칭이 바뀌며 국민과의 소통 강화 의지를 나타냈다.

대통령의 소통이란 무엇일까. 사람 간의 대화가 ‘말하기’와 ‘듣기’의 쌍방향 과정이듯, 대통령의 소통 역시 ‘국민에게 말하는 행위’와 ‘국민의 말을 듣는 행위’로 구성된다. 대통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에게 말을 걸지만,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 해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가 빠진다면 소통을 잘했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과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지 않아 실망감을 안겼던 사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위대한 지혜를 전한 성인(聖人)의 ‘성(聖)’이라는 글자가 귀(耳), 입(口), 왕(王)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동안 대통령의 ‘귀’ 역할을 해야 할 민정수석실은 여론과 민심 파악보다는 권력 기구 통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대통령의 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청통합수석’의 신설은 대통령의 귀 역할을 하는 자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는 대통령에게 있어 소통의 핵심이 ‘말하기’보다 ‘듣기’이며, 이를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경청통합수석’이라는 대통령의 귀가 열린 만큼,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대통령이 경청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반대자의 목소리까지 기꺼이 듣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자신의 편의 목소리만 듣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라 할 수 없다. 지난 6월 26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추경예산안 시정연설 후 야당 의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권성동 의원의 어깨를 ‘툭’ 치는 장면은 대통령다운 모습으로, 향후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이러한 장면을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이 반대편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 비로소 정치가 복원되고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대통령의 경청은 실제 정책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적 계산으로 경청하는 제스처만 취할 뿐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를 ‘상징적 반응성’이라고 한다면, 경청한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실질적 반응성’이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25일 호남 주민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한 여성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울먹이며 요구했다. 이 말을 들은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당장 제가 나선다고 뭐 특별히 될 것 같지는 않다. 진상 규명은 지금 수사 조사 기관에서 하고 있으니까 좀 기다려 보라”고 답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그 여성은 대통령의 공감에 위안을 받고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뻤을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민원을 정책에 반영할 수는 없지만,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소한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경청이 ‘상징적 반응성’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반응성’으로 이어질 때, 국민들은 정권 교체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효능감이 국민적 지지로 쌓여야 이재명 정부는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