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생포에서 고래고기 맛집을 찾는다면, 단순한 식사를 넘어선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장생포의 고래고기 식당은 사라진 산업과 생업, 그리고 포경선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장소이자, 과거를 애도하고 도시의 기억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내일을 준비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장생포는 과거 고래들이 모여들던 깊은 바다 덕분에 어업이 성행했던 곳이다.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귀신고래’가 단골손님이었을 정도로 고래가 드나들기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며 태화강, 삼호강, 회야강 등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부유물과 플랑크톤은 새우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고래에게 더없이 좋은 서식지가 되었다. 수심이 깊고 조수 간만의 차가 적어 큰 선박이 접안하기에도 용이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장생포는 어업이 크게 성행했으며, 당시의 번영은 개가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대단했다. 수출입 상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들도 즐비했다.
하지만 1993년, 명태, 복어, 킹크랩을 가공하던 세창냉동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냉동 창고는 주인을 잃었다. 폐허가 된 냉동 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2021년에는 장생포문화창고가 문을 열었다. 총 6층 규모의 이 문화 공간은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장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며, 특별 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은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이라는 고래 캐릭터를 활용한 항공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비행기 모형의 에어바운스를 타는 체험은 8월 24일까지 계속되며,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라는 전시회에서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하여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의 고요하고 단아한 수묵화와 풍경화를 사계절과 산수화, 풍속화의 멋에 맞춰 재구성한 미디어아트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일깨우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수십 년 된 냉동 창고의 문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 너머에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만든 것은 건축물 자체의 업사이클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층에 상설 전시되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 공업의 역사와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울산석유화학단지가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역사와, 당시 중화학공업 발달로 인한 중금속 중독 질환인 ‘온산병’의 아픈 기억까지 상주하는 해설사의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는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유용한 기름과 단백질원으로 울산 경제를 지탱했던 고래잡이는 1986년 IWC(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영광을 뒤로하게 되었다. 이제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맛보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즐기는 행위를 넘어, 사라진 산업에 대한 애도와 회상의 의례가 된다.
장생포 고래요릿집에서 맛볼 수 있는 고래고기는 대부분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를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특별한 음식으로 만든다. 12만 원짜리 ‘모둠수육’은 첫인상부터 고기와 닮아 육고기라 해도 믿을 정도다.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이 요리는 살코기, 껍질, 혀, 염통 등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다. 고래고기는 쇠고기보다 붉은 색을 띠며, 특히 ‘우네’라고 불리는 턱 아래의 가슴 부위는 고급 부위로 꼽힌다. ‘오배기’는 고래의 배 쪽 기름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어 있는 부위로, 고소한 기름과 쫄깃한 살코기의 조화가 일품이다. ‘일두백미(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난다)’라는 말처럼, 고래 한 마리에서도 최소 12가지 이상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해진다.
부모님 세대는 과거 부산에서 비린 고래고기를 먹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장생포 고래고기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에 찍어 먹는 고래고기는 각기 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떤 부위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어떤 부위는 꼬들꼬들한 생 조갯살 같은 식감을 선사한다. 특히 신선하면서 기름기도 적당한 살코기를 철판에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6.25 피란민들과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기도 하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도시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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