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23일

28년 전 한류의 씨앗, ‘사랑이 뭐길래’ 덕분에 지금 K-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의 토니상 6관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통해 한류의 성공 스토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까지 거머쥔 EGOT라는 말은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바로 지금, 한국 콘텐츠가 EGOT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눈부신 K-콘텐츠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28년 전 한류의 시작을 알렸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드라마가 바로 한류의 시작을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7년 6월 15일, 중국 CCTV에서 ‘아이칭스션머(?’情是什?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당시 중국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MBC에서 방송된 이 55부작 주말 드라마는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 64.9%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사랑이 뭐길래>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한국 드라마 최초로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으며, CCTV는 2차 방영권까지 구매해 1998년 저녁 시간대에 다시 편성하는 등 한류의 불씨를 지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류의 정확한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된 1997년을 한류의 원년으로 보는 시각이 가장 유력하지만, 1993년 드라마 <질투>의 중국 방영, 1994년 영화 <쥬라기 공원> 개봉 당시 대통령 자문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나온 “한국 사회에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발언, 1995년 SM 엔터테인먼트 출범과 CJ ENM의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SBS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등을 거론하는 학설도 있다. 또한, 중국 언론이 처음으로 ‘한류(한류)’라는 용어를 사용한 1999년 11월 19일을 기원으로 보거나, 대만 언론에서 먼저 ‘한류’를 보도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여러 학설 중에서도 <사랑이 뭐길래>가 가진 화제성, 상징성, 그리고 영향력은 단연 압도적이다. ‘용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한류라는 현상 자체가 시작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학계와 업계에서는 1997년 <사랑이 뭐길래>의 방영을 한류의 기원으로 널리 인정하고 있다. 바로 6월 15일이 그 출발점이다. 물론 이 시점을 원년으로 삼을 경우, 한류의 역사가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에 해당하며,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시대 구분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중국이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당시 서구 문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진 한국 문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중국은 ‘문화할인율’이 낮은 한국 대중문화를 대체재로 소비하고 있었으며, 중국 당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한류에 대해서는 통제를 가해왔다. 이는 이후 사드(THAAD) 사태를 계기로 더욱 강화된 ‘한한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K-팝 그룹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은 중국 시장과 무관하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한류와 K-콘텐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이는 문화 콘텐츠 현장에서 창작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한중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1997년 6월 15일 <사랑이 뭐길래>가 처음 방영된 날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에서 점화된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는 한국 드라마나 가요를 낮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사랑이 뭐길래>의 성공을 통해 K-콘텐츠의 높은 완성도와 보편적인 매력, 그리고 치열한 내부 경쟁 속에서 형성된 뛰어난 제작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수많은 히트 영상 콘텐츠가 등장했으며,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그 정점을 찍었다. K-팝 역시 2011년 SM의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불멸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 모든 성과의 흐름 속에서,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음악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까지 6관왕을 차지한 소식은 한류 성공 서사의 또 다른 획을 긋는 사건이다.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된 작은 공연 예술 콘텐츠가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모두 수상하는 EGOT라는 꿈같은 목표가 이제 한국 콘텐츠에게는 더 이상 ‘넘사벽’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28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의 작은 불씨가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K-컬처의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르기까지, 그 여정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