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아이 낳기 좋은 환경, ‘이것’만 있으면 나도 혜택받는다

최근 1년 사이 출생아와 혼인이 10개월 연속 증가하며 33년 만에 반가운 반등을 보이고 있다. 2025년 4월 출생아는 2만 717명으로 8.7% 늘었고, 혼인은 1만 8921건으로 4.9% 증가했다. 특히 30~34세 여성의 출산율이 34년 만에 최대 폭으로 늘어나면서 결혼과 출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적적인 흐름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부모가 일상에서 “아이를 낳길 잘했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양육 친화적인 환경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 작은 불편함이 쌓이면 출산율 상승세는 언제든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기본적인 편의 시설을 촘촘하게 갖출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 화장실과 기저귀 교환대 설치다. 이는 단순한 보육 정책을 넘어 모든 시민의 ‘생활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으로 서울시 전체 개방·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 즉 30%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이 575곳, 남성 화장실은 23곳뿐이다. 이는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아빠들이 겪는 불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저귀 교환대를 찾아 헤매거나,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아빠들이 많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시설 불균형은 성평등 돌봄과는 거리가 멀다. 더 나은 성평등 돌봄을 위해서는 성평등 설비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정책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인프라 구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올해 국가공무원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아빠 교육 및 캠프 프로그램 만족도 역시 평균 4.8점(5점 만점)으로 매우 높다. 이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에 대한 높은 의지와 만족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2025년에는 가족센터 등 공공·위탁 기관들이 예산 삭감 및 부족으로 인해 가족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기저귀 교환대나 유아 세면대 설치 예산은 ‘부대비’로 분류되어 삭감 대상이 되기 쉽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 신도시와 동네 상가 간의 인프라 격차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이상과 현실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변화의 가능성은 이미 행동으로 증명되고 있다. 아빠들은 아버지 역할, 소통, 놀이 교육 등에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5년 5월 ‘유아차 런’과 6월 ‘탄생응원 서울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건강한 양육 문화와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또한, 서울시 100인의 아빠단 50가족을 대상으로 진행된 서울대공원 캠핑장 1박 2일 공동 양육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양육 스트레스가 줄고 관계가 깊어졌다”는 긍정적인 후기가 쏟아지며 더 많은 양육 프로그램에 대한 바람을 나타냈다. 이러한 시민들의 열정과 노력을 일상으로 이어주는 것은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행동이 증명해야 할 몫이다.

출산율 반등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금 당장 채워야 할 네 가지 기본 장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평등 인프라의 표준화다. 국공립 시설, 대중교통 환승 거점, 대형 민간 시설에 가족 화장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남녀 화장실 모두에 유아 거치대, 교환대, 유아 세면대, 벽면 발판을 같은 비율로 갖추도록 ‘생활 SOC 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 예산 증액 및 주말 자녀 동반 프로그램 확대다. 공공 및 위탁 시설의 아버지 교육 예산을 늘리고, 자녀 돌봄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문화와 정책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에서 얻은 만족도를 인프라 개선 요구로 연결하여 ‘정책-행동-문화-정책’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돌봄 시민권’ 캠페인을 확산해야 한다. 체험형 행사 등을 통해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확산하고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출산율 반등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하면 “출산은 기쁜 일”이라는 메시지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으면 축하받고, 어디서든 편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도시와 나라가 만들어질 때, 출산율 그래프보다 더 큰 ‘행복지표’가 우리 삶을 채울 것이다. 거창한 구호보다는 화장실의 작은 교환대, 스포츠 시설의 가족 탈의실처럼 우리 눈높이에 맞춘 ‘생활 장치’이야말로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을 지속시킬 열쇠다.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