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반구천 암각화, 유네스코 등재로 6000년 선사 예술을 직접 만난다

이제 울산 반구천 암각화에 담긴 6000년 역사의 생생한 이야기가 더 쉽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지난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정식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는, 인류의 상상력과 예술성이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의 벽화’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넘어, 우리 스스로에게 특별한 혜택과 영감을 선사할 기회를 열어준다.

이번 유네스코 등재는 “선사 시대부터 600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는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졌다. 탁월한 관찰력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놀라운 예술성과 창의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키워드는 바로 ‘사실성’, ‘예술성’, ‘창의성’이다.

반구천 암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인 정길화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울산 언양에서 처음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는 높이 약 2.7미터, 너비 10미터의 바위 면에 620여 점의 다양한 도형과 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중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름모, 원형 등의 추상적 문양과 후대인 신라 시대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특징이다.

이어 1년 뒤인 1971년 12월 25일, 인근 대곡리에서는 ‘대곡리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새끼 고래를 이끄는 무리, 작살에 맞아 배로 끌려가는 고래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호랑이, 사슴 등 다양한 육지동물과 풍요를 기원했던 제의 흔적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두 암각화는 발견 당시 ‘크리스마스의 기적’ 또는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 불리며 고미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구천 암각화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6000여 년 전 동해 연안 거주민들이 집단으로 고래를 사냥하고, 그 이야기를 뭍으로 올라 반석 같은 바위에 새겨 하늘로 띄운 기도이자 공동체의 삶을 기록한 생활 연대기라는 점에서 인류 예술의 기원, 나아가 오늘날 다큐멘터리의 스토리보드와도 견줄 만하다. 고래 옆의 호랑이와 사슴, 미지의 코드를 품은 기하문, 천전리 암각화의 다섯 개 다이아몬드 형상은 단순한 그림이 아닌, 인류의 깊은 상상력과 예술 정신을 보여주는 보물이다.

하지만 이 소중한 유산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몰 위협과 싸워왔다. 댐 수위로 인해 바위가 잠기고 박락이 떨어져 나가며 어설픈 탁본으로 원본이 상실되기도 했다. 최근 가뭄으로 암각화가 자주 드러나고 있지만, 기후변화와 댐 운영의 변수는 여전히 ‘반구천’을 ‘반수천(半水川)’으로 만들 수 있다. 물속에 잠긴 유산은 세계유산이 아니기에, 등재 이후 철저한 보호와 관리 계획이 절실하다.

이제 울산시는 ‘고래의 도시’를 표방하며 암각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체험형 테마공원, 탐방로, 교육 프로그램, 워케이션 공간 등을 포함하는 생동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또한, AI 기반의 스마트 유산관리 시스템, 암각화 세계센터 건립 등 미래형 전략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보존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들 유적 역시 관광객 증가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진본 동굴을 폐쇄하고, 복제 동굴이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복원 전시를 통해 ‘간접 관람’ 방식을 채택했다. 문화유산은 원본이 주는 ‘아우라’가 최상이지만, 후대에 온전히 물려줄 책임 또한 막중하다.

다행히 현대 기술은 3D 스캔, 디지털 프린트, AI 제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대중이 접근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의 꿈은 이제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되살아나, 인류와 함께 나누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장엄한 바위의 서사가 ‘수몰의 현장’이 아닌, 영원히 보존되고 끊임없이 우리와 소통하는 ‘기적의 현장’으로 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