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희망의 유전자를 깨우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우리

지금, 우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복잡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얼어붙은 경제와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 고물가와 고금리, 청년 실업,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까지. 우리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벅찬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 국민의 정신건강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통계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학생들은 입시와 취업 준비에 지쳐 힘들어하고, 어렵게 취업해도 미래에 대한 확신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예측성이 떨어지는 사회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작은 자극에도 짜증과 분노가 쉽게 폭발하는 현실은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한다. 노인들 역시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외로움에 시달리며 점점 소외되고 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우리 사회 전반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나라로 성장했다. K-pop, K-drama, K-food는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BTS와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은 한국 문화를 세계 중심 무대로 이끌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창의성과 끈기, 노력의 결실이다. 경제적으로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았으며, 정보통신, 의료, 교육, 치안 등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질서, 시민의식, 안전함에 놀라움을 표한다. 밤늦은 시간에도 거리를 안심하고 활보할 수 있고, 카페에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되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우리는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더 불안하고 고립되었으며, 쉽게 지쳐버리는 사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 열심히, 너무 오랜 시간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 성장이나 기술 발전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잠시 여유를 갖는 것, 그리고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를 이루어냈고, 국민들의 건강한 공분은 민주화를 성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모님 세대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그 끈기와 저력은 바로 우리 민족 속에 깊숙이 자리한 ‘희망의 유전자’ 덕분이다. 이제 우리는 이 어려운 현실 앞에서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위기를 이겨낸 ‘희망의 유전자’를 다시 꺼내 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할 수 있고 이미 수없이 해냈다.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단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품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다.

새 정부는 특정 지역, 특정 집단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정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정부는 이 땅을 지켜온 국민의 희생과 열정을 기억하고, 우리 국민이 가진 창의성과 근면성, 공동체 정신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정부는 국민의 진정성과 방향성을 신뢰할 때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희망의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그 토양을 만들고 햇살을 비추는 일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버티는’ 시간이 아닌 ‘함께 걸어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앞만 보며 달려온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옆에 있는 사람을 살필 때다. 내 옆에 지쳐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 나 또한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사회다. 우리 속에 간직한 희망의 유전자, 오랜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슴 속에 뜨겁게 살아 숨 쉬는 그 유전자를 다시 꺼내 들 시간이다.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직장인 정신건강 향상에 힘쓰며, 2024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 정신건강 증진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