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세상일의 대부분은 각자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하지만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해가 지면 사람이 살지 않아 두려운 원도심, 그리고 텅 빈 혁신도시를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난 1992년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에서는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캠프 벽에 세 가지 메시지가 걸려 있었다. 바로 “변화 vs 현상 유지”, “경제야, 바보야”, 그리고 “의료보험을 잊지 마라”였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는 걸프전 승리로 9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턴의 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은 ‘경제야, 바보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당시 미국 경제가 겪고 있던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 구호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국내 경제 문제로 돌렸고, 결국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처럼 성공적인 정책 추진과 생태계 번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얽히고설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며, 먹이사슬, 수분, 분해와 재생산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 감자에 의존했던 생태계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감자역병으로 인해 100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을 겪었다.
둘째는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가 식물을 거쳐 동물과 미생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깨지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예를 들어, 쓰러진 나무는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의 분해 과정을 거쳐 토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순환이 이루어져야만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쉽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폐쇄된 가문 내에서의 반복적인 짝짓기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간과한 정책들이 지방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방 도시를 살린다며 허허벌판에 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맞벌이 부부의 배우자가 일할 일자리가 없어 이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혁신도시로 발령이 나더라도 배우자의 직장 문제로 인해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방 도시를 살리기 위해 너도나도 신도심을 만들면서 인구 증가 없이 아파트를 무분별하게 짓는 정책은 원도심 공동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는 이제 유령 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원도심이 쇠락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심지어 창원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 50k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청년들은 마음의 거리가 500km라고 느낀다. 자동차가 없으면 출퇴근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청년들은 차라리 서울로 가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청년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근 전철’은 타당성 검토에서 번번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이러한 생태계의 중요성은 반도체 산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뒤처진 이유로 파운드리 생태계 경쟁에서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설계도를 만들면, 디자인 스튜디오는 이를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다듬고, IP 회사로부터는 특정 부품 설계도를 구매한다. 이때 해당 파운드리에서 이미 제작 경험이 있는 IP여야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칩을 구운 후에는 패키징과 후공정을 거쳐 칩을 수직으로 쌓거나 수평으로 붙이는 첨단 기술이 요구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모든 단계에서 TSMC의 생태계에 턱없이 밀리고 있다. IP 파트너 숫자가 10배 적거나, 패키징 기술에서 10년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음을 삼성전자가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생태계 전체를 번성하게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일의 대부분은 각기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며,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약 클린턴에게 이러한 상황을 물었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으며,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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