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미국 여권, 2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최강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미국 여권의 위상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최강 여권 상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미국 시민들의 해외여행 자유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헨리 여권지수에 따르면, 과거 2014년 부동의 1위를 자랑했던 미국 여권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전 세계 227개 목적지 중 180곳에만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그동안 미국 여권 소지자가 누렸던 강력한 여행 편의성이 축소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번 미국 여권 순위 하락은 ‘입국 허용 변화’라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발생했다. 올해 4월, 브라질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시민의 비자 면제를 철회하면서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뒤이어 중국이 비자 면제 대상국 확대 명단에서 미국을 제외했고, 파푸아뉴기니와 미얀마 역시 자국의 입국 정책을 조정하면서 미국의 여권 점수는 더욱 하락했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소말리아의 새로운 전자비자(eVisa) 시스템 도입과 베트남이 미국을 최신 무비자 입국 확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다른 국가들의 여권 점수는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현재 헨리 여권지수에서는 싱가포르가 193개국, 한국이 190개국, 일본이 189개국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어 1위부터 3위까지 아시아 3개국이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이 순위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H. 케일린 회장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순위 변동이 아닌, 글로벌 이동성과 소프트파워의 역학 관계 변화로 진단했다. 그는 개방성과 협력을 수용하는 국가들이 앞서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특권에 안주하는 국가들은 뒤처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여권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한때 1위를 차지했으나 올해 7월 이후 6위에서 8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자 면제 접근성’과 ‘입국 개방성’ 간의 격차이다. 미국 여권 소지자는 180개 목적지에 비자 없이 갈 수 있지만, 미국이 자국 입국을 비자 없이 허용하는 국가는 단 46개국에 불과하다. 이는 전 세계 199개국 및 지역을 대상으로 사전 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하는 국적 수를 기준으로 하는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 미국이 77위에 머무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의 후퇴는 정치적 요인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애니 포르자이머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의 정책이 내향적으로 변해왔으며, 이러한 고립주의적 사고방식이 미국 여권의 위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조적으로 중국은 지난 10년간 헨리 여권지수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인 국가 중 하나다. 2015년 94위였던 중국은 올해 64위로 올라섰으며,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목적지가 37곳 늘어났다.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도 중국은 눈에 띄게 상승하여 76개국에 입국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보다 30개국이 더 많은 수치다. 러시아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 등 중국의 ‘개방 확대 전략’은 세계 이동성 강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여권의 위상 하락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제2 시민권’ 확보 경쟁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