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 고래, 사라진 과거를 맛보고 도시의 미래를 빚다

장생포의 고래 요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사라진 산업과 생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제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맛보며 도시의 역사를 되새기고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장생포는 과거 고래잡이의 중심지였으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잡이 그림과 고래 뼈, 유물들은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고래가 모여들었음을 보여준다. 깊은 수심과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지리적 이점, 그리고 강 하류에서의 풍부한 부유물 유입은 장생포 앞바다를 고래들의 이상적인 서식지로 만들었다. 특히 ‘귀신고래’는 장생포의 단골손님이었다. 고래가 드나들기 쉬운 깊은 바다는 대형 선박을 대는 데도 용이했으며, 이는 장생포가 번성했던 어업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한다. 당시 장생포는 개가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과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들이 즐비했다.

1973년 남양냉동을 시작으로 1993년 세창냉동까지 냉동 창고 산업이 발달했으나, 경영 악화로 문을 닫기도 했다. 폐허가 된 냉동 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로 재탄생했다. 총 6층 규모의 장생포문화창고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을 갖춘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며, 특별 전시관, 갤러리,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을 제공한다.

2층 체험관에서는 ‘에어장생’ 항공 체험을 통해 나이를 잊고 사진 촬영을 즐길 수 있으며, 종이 고래 접기, 고래 붙여 바다 만들기 등 다양한 놀거리도 마련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오는 8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선사한다. 특히 수십 년 된 냉동 창고 문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업사이클링의 좋은 예다.

또한, 2층에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의 근현대 산업 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강의 기적을 선도했던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성장 과정을 담은 전시 공간은 당시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부모 세대에게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굴뚝 연기로 인한 중금속 중독 질환, 즉 ‘온산병’의 아픔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상주하는 해설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생포의 고래 산업은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IWC(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으로 1986년 막을 내렸다. 100년도 안 된 장생포 고래잡이의 영광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장생포에서는 여전히 고래고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지만, 고기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에서 맛볼 수 있는 ‘모둠수육’은 12만 원으로, 첫인상은 육고기와 흡사하다.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접시는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한다. 살코기, 껍질, 혀, 창자, 염통 등 식용 가능한 모든 부위는 쇠고기보다 붉은 빛을 띠며, 특히 육회는 소고기와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두백미’라 불리는 고래 한 마리에서는 최소 12가지, 세분화하면 스무 가지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고래 껍질 중 턱 아래 쭈글쭈글한 ‘우네’는 고급 부위로, 일본어 ‘무네(가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배기’는 고래의 배 쪽 지방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어 있는 부위로, 고소한 기름과 쫄깃한 살코기의 조화가 일품이다. 처음에는 비린 맛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와 함께 즐기는 고래고기는 저마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때로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꼬들꼬들한 생 조갯살 같은 독특한 식감을 선사한다. 신선하면서도 기름기가 적당한 살코기를 철판에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장생포의 고래 요리는 단순한 미식 경험을 넘어, 사라진 산업과 생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고 있다. 고래로 꿈꿨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녹아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