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부동산 쏠림, 노후 빈곤의 덫? 가계 자산 구조조정 시급하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노후 빈곤의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묶여 있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경우 심각한 노후 빈곤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건축 자금 마련의 어려움과 함께 늘어나는 빈집, 슬럼화되는 아파트 문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동산 중심의 가계 자산 구조조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에서는 ‘부동산(不動産)’이 아닌 ‘마이너스 동산(負動産)’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 관리비와 세금 부담 때문에 팔리지도 않고, 오히려 돈을 얹어줘야 가져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2018년 848만 채였던 일본의 빈집은 2023년 900만 채로 늘어났고, 2038년에는 전체 주택의 31.5%까지 빈집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농촌 지역뿐 아니라 도쿄 수도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빈집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이다. 여기에 더해, 구미 선진국의 공동화 방지 대책 없이 매년 80만 채 이상의 신축 주택이 공급되는 현실도 문제이다. 주택건설업자는 끊임없이 신규 주택을 지으려 하고, 소비자 역시 주택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자산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독주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건축이 지연되어 슬럼화되는 노후 아파트 단지이다. 일본에서 아파트를 ‘구분소유주택’이라고 부르듯, 우리나라 역시 재건축을 위해서는 주민 80%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건축의 경제성 부족, 소유주들의 고령화, 상속 문제 등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 재건축에 성공하려면 좋은 위치와 낮은 층수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재건축을 못한 아파트들은 결국 슬럼화되고 빈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노후화된 아파트 단지는 주변 부동산 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니혼대학 시미즈 치히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건축된 지 20~25년 된 아파트가 1% 증가하면 해당 지역의 지가는 4%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 근교의 한 아파트 소유주는 1984년 1200만 엔에 매입한 28평형 아파트가 1991년 3600만 엔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300~400만 엔에도 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4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는 재건축 가능성도 희박한데, 이는 재건축 기금 마련이 안 되어 있고 주민 대다수가 고령으로 재건축 자체를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소유주의 20%만 반대해도 재건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파트 처리 문제는 ‘살다 떠나면 그만’이라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지진으로 붕괴되어 저절로 철거된 아파트들이 재건축에 성공한 사례로 꼽힐 정도이다.

우리가 일본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훨씬 더 빠르게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153만 4919채로 전년 대비 8만 가구 증가했다. 전국 총 주택 수의 7.9%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122곳에서 빈집 비율이 10%를 넘는다. 빈집은 농촌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신도시 개발로 젊은 층이 원도심을 떠나면서 원도심의 인구가 줄고, 고령층이나 1인 가구 주민 사망 후 상속자가 없을 경우 빈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파트 슬럼화 문제이다. 일본의 경우, 전체 주택에서 철근·콘크리트 대규모 아파트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전체 주택 1954만 6000채 중 64.6%인 1263만 2000채가 거의 모두 10층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이다. 이 비율은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10년, 20년 후 이 엄청난 수의 아파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보다 앞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정책 당국은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 차원에서도 가계 자산의 부동산 편중 현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동산에 쏠린 자산을 구조조정하여 노후 빈곤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는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접하며 노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 설계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