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3일

나이듦, 이제 두렵지 않아요! 나에게 딱 맞는 환경과 지원,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삶은 점점 더 불편하고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고령자 지원’이라는 틀을 넘어, 모든 시민이 삶의 과정에 따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전환점에 섰습니다.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과제입니다. 급속한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될 ‘과정으로서의 고령화’에 반응하는 유연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돌봄, 건강, 주거 등이 각각 분리된 영역으로 다루어졌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살던 집에서 나이 들기’라는 이상은 중요하지만, 건강 상태 변화, 돌봄 욕구 증가 등 우리 삶의 다양한 변화에 맞춰 주거와 서비스가 함께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즉, 단순히 집을 바꾸는 것을 넘어, 삶의 기반 자체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는 고령자만을 위한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령친화도시는 특정 세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지원받을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도시는 오늘날의 청년, 중년, 노년 세대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진정한 초고령사회 대응은 ‘고령자 정책’을 넘어, 모든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공간에 머무는 것’에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망의 재구성’으로 고령화 대응 방향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고령자가 밀집된 지역을 기반으로 건강관리, 주거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모델이 있습니다. 또한, 건강 상태에 따라 연속적인 돌봄이 가능한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는 삶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환경이 유기적으로 제공되도록 설계됩니다. 최근 주목받는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모델은 대학 캠퍼스와 연계하여 세대 간 교류, 평생학습,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삶의 의미와 소속감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고령화라는 과정을 ‘삶의 통합적 변화’로 인식하고, 주거, 의료, 사회적 자원들을 ‘동선 위에서 엮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따라서 이 모델들은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닌, 삶의 전환을 동반하는 인프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까지 고령자 주거복지정책을 ‘시설’과 ‘재택’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이분법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삶의 전환 지점들과 그 지점마다 요구되는 연속적인 환경과 서비스가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 집에 살아야 오래 사는 것”이라는 단선적인 생각은 오히려 주거 이전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결과적으로는 서비스 미이용이나 방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령자의 삶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신체 기능 저하, 배우자 사별, 소득 변화, 돌봄 필요성 증가 등 시간과 함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역동적인 변화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주거, 복지, 보건의 영역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 유기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제 ‘살던 집에 머무르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기보다, 고령자의 변화에 맞춰 주거와 서비스가 함께 이동하고 조정될 수 있는 유연한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와 ‘지역공동체와 함께 나이 들기(Aging in Community)’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공간의 개념 또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고령자가 살아가는 공간은 더 이상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라는 물리적 단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지역의 보건소, 도서관, 마을식당, 경로당, 복지관, 공원, 골목길 모두가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며, 이들의 ‘네트워크’가 곧 고령친화도시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맥락에서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가 아닌,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도시, 즉 전 생애 주기를 포괄하는 연령친화도시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령자의 삶을 고정된 상태로 보는 정책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재택이냐 시설이냐, 복지냐 의료냐 하는 이분법적 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는 고령화라는 진행형의 과정에 따라 주거환경과 서비스 체계가 함께 유기적으로 반응하도록, 개인의 ‘집’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지역사회와 도시 전체가 함께 유연하게 전환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UBRC, NORC, CCRC와 같은 해외 모델은 참고할 만한 사례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우리 실정에 맞게 설계하고 구현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정책적 통합력입니다.

이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에 머무르지 말고,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진정한 고령친화도시란,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하는 도시이며, 주거와 서비스, 커뮤니티가 함께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삶의 유연성을 지켜주는 도시입니다. 이제는 늙음이라는 생애 과정을 ‘견뎌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 준비할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원이 아니라, 동행을 위한 체계로. 정책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 반응하는 환경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