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도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노후 자금 마련만큼이나 부부간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점, 이제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때이다. 특히 퇴직한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발생하는 부부 갈등은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으며, 이는 심한 경우 황혼이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 부부 모두가 만족스러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낮 시간 동안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퇴직 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퇴직한 공무원들의 수기를 심사했던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는 105건의 수기 중 대부분이 ‘퇴직 후 절벽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할 만큼 갈 곳이 없어 힘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놀랐다고 전했다.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한 남성 역시 퇴직 후 3개월간의 여유로운 생활이 오히려 답답함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아침마다 아내의 눈치를 보거나, 동네 도서관에서 노인들이 신문 한 장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취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남성은 최근 많이 생기고 있는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주 5~6일, 하루 5~6시간씩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월 70만 원의 급여와 집에서 내던 건강보험료 30만 원을 합쳐 총 100만 원을 벌어다 주고 집에 없으니, 그의 아내가 ‘그렇게 무섭던 천사로 바뀌었다’는 수기의 내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는 퇴직한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발생하는 부부 갈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20년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남편이 집에 있음으로써 아내가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우울증, 고혈압, 천식, 공황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증후군은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라는 의미로 ‘부원병(夫源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남편이 현역으로 일하는 동안 부부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퇴직 후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남편은 회사일에, 아내는 가사와 자녀 양육에 집중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퇴직 후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아내가 신경 쓰지 않았던 남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90년 14%였던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 중년·황혼이혼 비율이 2023년에는 23%로 증가했으며,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이혼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이십수 년간 이혼율 자체는 꾸준히 낮아졌지만, 전체 이혼 건수에서 중년·황혼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급증했다. 여기에는 퇴직 후 발생하는 부부 갈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의 부부 화목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의 유형은 집안일을 잘 돕거나, 건강하고, 요리를 잘하거나, 상냥한 남편이 아니라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라는 일본의 한 전문가의 지적은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한다. 따라서 퇴직 후 노후자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부부의 화목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부부 모두 낮 동안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혹은 이 세 가지를 병행하는 활동이든, 각자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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