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세계 최강대국을 상징하던 미국 여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헨리 여권지수에서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이는 단순한 순위 하락을 넘어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2014년에는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미국 여권은 이제 말레이시아와 함께 공동 12위로 내려앉았으며, 전 세계 227개 목적지 중 미국 여권 소지자가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국가는 46개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국 여권의 강력한 힘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했다. ‘총과 달러’가 통하는 곳이라면 비자라는 절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이제 국제 사회는 ‘힘이 센 나라’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나라’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여권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46개국에 그치는 것은 이러한 상호 신뢰의 결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싱가포르, 한국, 일본이 헨리 여권지수 상위권을 휩쓸며 ‘이동성 패권’을 장악했다. 이들 국가의 경쟁력은 탱크나 핵무기가 아닌, 투명한 행정과 경제적 신뢰, 그리고 국제 협약 이행 능력에 기반한다. 중국 또한 놀라운 속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폐쇄된 대국’에서 ‘개방적 파트너’로 이미지를 전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고립주의’로 이어지며 여권의 쇠락을 초래했다. 브라질, 베트남,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비자 면제 대상국에서 제외하면서 정치적 고립이 곧 이동성의 쇠퇴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 무대에서 ‘문을 닫는 나라’가 결국 ‘닫힌 문 앞에 서게 될’ 수 있다는 경고로 다가온다.
이제 미국인들조차 ‘제2의 여권’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올해 미국인의 투자이민 신청 건수는 전년 대비 67% 증가했으며, 이는 ‘아메리칸 드림’이 ‘글로벌 드림’으로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이제 국적은 더 이상 출생의 결과가 아닌, 전략적 선택의 시대에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헨리 여권지수가 보여주는 진정한 메시지는 단순히 여행할 수 있는 목적지의 숫자가 아니다. 이는 얼마나 많은 나라와 신뢰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관계의 증명서’로서의 여권의 역할을 강조한다. 세계는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동시에 분열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진정한 국력은 ‘문을 여는 힘’이며, 미국 여권이 잃은 것은 비자가 아니라 바로 신뢰의 여백이다. 힘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 여권은 국가의 신용등급이자 외교적 신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닫힌 문 앞에서 멈춰 선 미국의 모습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신뢰는 외교에서 가장 강력한 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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