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당신이 사랑하는 K-콘텐츠, 세계가 먼저 알아본 우리 문화의 힘

우리 문화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문화 역수입’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익숙했던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더 나아가 우리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일본의 우키요에처럼, 때로는 본국에서 잊혔던 것이 타국에서 빛나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인기의 역전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 역수입 현상은 어떻게 가능하며,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문화 역수입은 종종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 부족이나 집단적 콤플렉스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외부의 찬사를 통해 비로소 우리 것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화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형성된 자학 사관이 이러한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외부의 평가를 통해 우리 자산을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들 수 있다.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문화에서 시작된 탱고는 초기에는 저속한 오락으로 취급받았지만,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에게 그 관능적 매력이 발견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외국에서 인정받은 후 자국에서 재평가된 탱고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남미 감수성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포장지로 사용되었던 우키요에를 프랑스 예술가들이 발견하면서 큰 감명을 주었고, 이는 일본 내에서 우키요에 대한 재평가와 ‘자포니즘’ 열풍으로 이어졌다. 고흐, 모네, 드가와 같은 유럽 거장들의 작품 속에 우키요에의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화 역수입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판소리나 막걸리처럼 외국인에게 먼저 호평받으며 한국인들이 그 진가를 뒤늦게 재평가한 경우들이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고유의 정서와 가족주의, 즉 ‘K-신파’적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감성 중심의 한국형 정서 서사’로 불리는 이 작품은 눈물, 헌신, 어머니와 고향, 세대 간의 단절과 화해 같은 보편적인 서사를 통해 강인한 여성의 서사로도 주목받으며 ‘정서의 수출’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적 정체성의 확인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아시아권과 중남미권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고 한다.

K-팝과 드라마의 성공 과정 역시 유사하다.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후, 국내 언론과 정책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류’라는 용어 자체가 K-콘텐츠의 인기를 보도한 중화권 언론의 명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우리 문화가 해외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자국 내에서 의미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인기리에 소비될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한류’를 인식하고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와도 연결된다.

문화는 끊임없는 순환과 회귀를 통해 살아 숨 쉰다. 문화 역수입은 바로 그 순환의 중요한 국면이며, 앞으로 우리 문화의 미래는 이러한 회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되돌아온 우리 문화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고유의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해외로 보내는 대신 우리 안에서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문화 순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MBC 교양 PD 출신으로,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서 K-콘텐츠와 한류 정책을 연구하며 ‘공감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