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28년 전 한류의 시작, <사랑이 뭐길래>로 중국을 사로잡다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하며 한류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러한 성공 속에서 28년 전, 중국에서 한류의 씨앗을 뿌렸던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이야기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드라마의 방영은 단순한 드라마의 성공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97년 6월 15일, 중국 CCTV에서 ‘?情是什? ài qíng shì shén me 아이칭스션머’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MBC 주말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한국에서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64.9%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반응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한국의 문화와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중국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에서 평균 시청률 4.2%,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거둔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매주 일요일 아침, 중국 가정에 한국의 정겨운 대가족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시청자들은 한국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CCTV는 2차 방영권까지 구매하며 1998년 저녁 시간대에 다시 편성하는 등 그 인기는 식지 않았다. 이러한 <사랑이 뭐길래>의 성공은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는 불씨가 되었다.

한류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된 해를 한류의 원년으로 보는 시각이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록 ‘한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9년이지만, 이미 1997년 당시에는 ‘실행으로서의 한류’, ‘현상으로서의 한류’가 중국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와 K팝은 중국 시장에서 점차 입지를 넓혀갔다. <질투>(1993), <쥬라기 공원> 개봉(1994), SM 기획사 출범 및 CJENM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1995) 등 여러 사건들을 한류의 기원으로 보는 주장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방영 당시의 화제성, 상징성, 그리고 중국 내 미친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사랑이 뭐길래>가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중국 당국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한류에 대해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으며, 사드(THAAD) 사태를 계기로 ‘한한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은 중국 시장과 무관하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류가 특정 국가의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문화 콘텐츠 자체의 힘으로 세계화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28년 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일으킨 파장은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에는 폄하되기도 했던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K-콘텐츠로서의 높은 완성도와 보편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게 된 것이다. 이후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수많은 히트작들이 탄생했으며, K팝 역시 BTS, 블랙핑크 등을 중심으로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렇기에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이라는 쾌거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28년 전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시작한 한류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EGOT(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를 완성해가는 한국 콘텐츠의 역사는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