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23일

장생포 문화 창고 방문으로 알아보는 고래 산업의 역사와 현재

수국 축제로 관광객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 주말, 울산 남구 장생포 문화 창고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장생포는 과거 고래 산업으로 번성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여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예술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장생포 문화 창고에서는 고래 산업의 역사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울산 장생포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예로부터 고래가 자주 출몰하던 깊은 바다였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적고 풍부한 플랑크톤 덕분에 고래들의 좋은 서식지였으며, 이는 고래잡이 산업 발달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장생포 앞바다에 고래가 드나드는 것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고래 기름과 고기는 울산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장생포의 번영은 개가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대단했습니다. 수출입 상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들이 빼곡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도 즐비했습니다. 1973년 남양냉동이 들어섰고, 1993년에는 세창냉동으로 바뀌었으나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러한 폐허가 된 냉동 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끝에 2021년 장생포 문화 창고로 개관했습니다. 총 6층 규모의 건물에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등이 마련되어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별 전시관, 두 개의 갤러리, 상설 미디어 아트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어 하루 종일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로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2층 체험관의 ‘에어장생’ 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고래 캐릭터 ‘에어장생’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환영 사진 촬영, 종이 고래 접기, 고래를 붙여 바다 만들기 등 다양한 놀이 활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비행기 모형의 에어바운스까지 탈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오는 8월 24일까지 진행됩니다.

또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라는 전시회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 시대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하여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우리의 고요하고 단아한 수묵화와 풍경화를 사계절과 산수화, 풍속화의 멋에 맞춰 재구성한 미디어 아트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일깨워줍니다. 수십 년 된 냉동 창고의 문을 그대로 살려 그 너머에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로 활용한 것은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2층에서 상설 전시되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입니다.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이 집약된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 동력이었으며, 이곳의 성장은 부모 세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쉼 없이 매캐한 연기를 내뿜던 굴뚝과 함께 중금속 중독 질환인 ‘온산병’과 같은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상주하는 해설사의 재미있는 설명을 통해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에는 틀린 일들이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래 붐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입니다. 한반도 연근해는 고래의 황금어장이었으나, 우리나라가 포경업에 무심한 사이 외국 선박에 개방되고 남획되었습니다. 1946년 최초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며 근대 고래잡이가 시작되었고, 울산 지역 경제를 지탱했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100년도 안 된 장생포 고래잡이의 영광은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장생포에서는 여전히 고래고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밍크고래 등 혼획된 고래만을 합법적으로 유통하지만, 고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은 고래고기를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12만 원짜리 ‘모둠수육’은 첫인상이 육고기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진 한 접시는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합니다. 살코기, 껍질, 혀, 염통 등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으며, 특히 살코기는 쇠고기보다 더 붉은 색을 띱니다. 설탕과 참기름에 버무린 고래 육회는 소고기와 거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래 한 마리에서는 최소 12가지 맛이 난다’고 전해지는데, 세분화하면 스무 가지 맛도 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특히 고급 부위로 꼽히는 ‘우네’는 고래 껍질 중 턱 아래 쭈글쭈글한 가슴 부위로 소량만 나는 귀한 부위입니다. ‘무네’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이름에는 우리 포경업이 일본에서 기인한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오배기’는 고래의 배 쪽 기름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어 있는 부위로, 기름의 고소함과 살코기의 쫄깃함이 조화를 이룹니다. 부모님은 과거 비린 고래고기 경험으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번에는 기우였습니다.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에 찍어 먹는 고래고기는 저마다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부위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다른 부위는 꼬들꼬들한 생 조갯살 같은 식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신선하면서도 기름기가 적당히 있는 살코기를 철판에 구워 먹으면 소고기 못지않게 맛있다는 주인장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장생포의 고래 요리집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를 넘어섭니다. 이곳에는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사라진 산업, 사라진 생업, 사라진 포경선의 향수를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입니다. 고래로 꿈을 꾸었던 어부들, 고래 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이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