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생포에서 고래고기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장생포는 단순한 식사 장소를 넘어, 사라진 산업과 옛 생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은 특별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과거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장생포의 기억을 고기 한 점에 담아 음미하며, 도시의 역사를 되짚고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장생포는 과거부터 고래가 모이던 깊은 바다로,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가 이루어졌음을 반구대암각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강 하류에서 풍부한 먹이가 유입되어 고래들에게 이상적인 서식지였다. 특히 ‘귀신고래’가 자주 출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장생포는 과거 매우 번성했던 포경업의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수출입 선박이 즐비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결정으로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장생포의 고래 산업도 과거의 명성이 되었다. 현재 장생포 고래요릿집에서는 주로 혼획된 밍크고래 등을 합법적으로 유통하고 있지만, 고기값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생포는 밍크고래를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며,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로 인해 더욱 많은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장생포의 고래고기는 부위마다, 조리법마다 다채로운 맛과 식감을 자랑한다. 12만 원짜리 ‘모둠수육’은 삶은 수육과 생회가 어우러져 육고기와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쇠고기보다 붉은 빛깔을 띠는 살코기, 껍질, 혀, 염통 등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으며, 고래 한 마리에서 최소 12가지, 많게는 20가지 이상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가슴 부위인 ‘우네’와 배 쪽 지방층과 살코기가 겹겹이 붙어 있는 ‘오배기’는 고래 특유의 맛과 식감을 극대화하는 고급 부위로 알려져 있다. 고래고기는 소금, 초고추장, 고추냉이 간장 등 다양한 소스와 함께 즐기면 더욱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보쌈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꼬들꼬들한 식감을 선사한다. 신선하고 적당한 기름기가 있는 살코기를 철판에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장생포는 단순한 고래고기 식당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변화했다. 과거 냉동 창고였던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여 2021년 개관한 장생포문화창고는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총 6층 건물에는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을 비롯해 특별 전시관, 갤러리,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무료로 문화를 즐길 수 있다. 2층 체험관의 ‘에어장생’ 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며, 종이 고래 접기, 고래 붙여 바다 만들기 등 다양한 놀이 활동도 제공된다. 또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대표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회는 감동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장생포문화창고 2층에 상설 전시되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부모 세대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안겨주는 공간이다. 울산 공업의 역사와 과정을 보여주는 이곳은,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성장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세대들에게 당시의 애환을 되새기게 한다. 1980년대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발생했던 중금속 중독 질환 ‘온산병’과 같은 과거의 아픈 역사도 상주하는 해설사의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장생포문화창고는 과거 냉동 창고의 문을 그대로 살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활용하는 등 업사이클링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이렇게 폐허가 될 뻔한 공간이 시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장생포의 고래 문화는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라진 산업과 생업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더하며, 방문객들에게는 다채로운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이제 장생포에서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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