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왕릉 답사 떠나요! 최대 25명만,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 나도 참여할 수 있다

조선왕릉과 궁궐을 직접 걸으며 역사를 배우는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2025년 하반기 왕릉팔경’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과 궁궐을 연계한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이번 하반기 프로그램은 순종황제 능행길을 포함해 대한제국 황실 유적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주목해야 할 예약 일정이 있다. 9월 예약을 위한 8월 21일, 10월 예약을 위한 9월 25일, 그리고 11월 예약을 위한 10월 16일이다. 모든 예약은 오전 11시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선착순으로 이루어지니 서둘러야 한다. 회당 참가 인원은 25명으로 제한되며, 한 사람당 최대 4명까지 예약 가능하다. 어르신,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전화(02-738-4001)로도 예약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이번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단순히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왕릉과 왕릉을 잇는 길 위에서 역사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체험으로 구성된다. 특히 능침 답사가 포함되는 특성상 참가 인원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회차당 25명 정원은 상반기 프로그램에서 소폭 확대된 것이지만,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예상해야 한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는 여섯 코스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하반기에는 두 코스가 추가로 운영될 예정이다.

기자는 2025년 9월 초, ‘왕릉팔경’ 프로그램의 새로운 코스인 ‘순종황제 능행길’에 참여했다. 늦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이번 여정은 구리 동구릉에서 시작해 남양주 홍릉과 유릉까지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은 조선 왕실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탐방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릉 문화를 비교하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근대 전환기의 역사와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구리 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선조의 목릉, 인조의 휘릉, 문종의 현릉, 경종의 혜릉, 영조의 원릉, 추존왕 문조의 수릉, 현종의 숭릉, 헌종의 경릉 등 총 9기의 왕릉이 모여 있다. 동구릉은 이름 그대로 아홉 개의 왕릉이 모여 있는 조선 최대 규모의 능역이다. 1408년 태조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현종의 숭릉까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탐방 중 인상 깊었던 점은 표석(表石)에 관한 설명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없었던 이 돌 표지석은 송시열의 상소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송시열은 후손들이 왕릉을 구분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왕릉마다 해당 임금을 알 수 있는 표석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져 효종의 능인 영릉에 처음으로 표석이 세워졌으며, 이후 왕릉 제도에 확산되었다. 표석에 사용된 전서체 또한 송시열의 주장으로, 제왕은 일반인과 구분되는 존재로서 장례와 예제 또한 달라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순종황제의 능행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삶과 역사의 전환점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유릉은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으로, 침전에서 홍살문까지 문무관 석상과 코끼리, 사자 등 다양한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1908년 순종은 ‘향사리정에 관한 건’이라는 칙령을 통해 제사 횟수를 기존보다 줄였는데, 이는 대한제국 시기의 예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봉분을 뒤덮은 억새에는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후손들의 효심이 담겨 있다. 태조의 유언에 따라 고향 함흥에서 억새를 가져와 봉분에 심었고, 이 전통은 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건원릉의 표석에는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이라 새겨져 있어, 태조의 위상이 황제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왕릉의 핵심 의례 공간인 정자각은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중심 건물이다. 이곳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을 상징하며, 해방 직후 10여 년을 제외하고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제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추존왕의 능인 수릉은 효명세자로 알려진 익종대왕과 신정익황후의 합장릉이다. 추존왕의 무덤은 정통 왕릉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태조 건원릉에 네 쌍씩 세워진 호랑이와 양 석상이 추존왕의 능에는 절반만 배치되는 식이다. 신도비와 표석 또한 왕릉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세 기의 봉분이 나란히 배치된 삼연릉은 헌종과 두 왕비(효현왕후, 효정왕후)가 합장된 능이다. 비석에는 ‘부좌(附左)’ 표기가 확인되며, 이는 당시의 서열 의식이 왕릉 공간에도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삼연릉 앞의 비석은 여러 차례 다시 새겨진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은 조선 왕릉의 형식을 벗어나 대한제국 황릉의 양식을 따른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 왕조에서 황제국으로 체제를 전환하면서 능의 조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석물의 배치, 봉분의 규모, 향어로 장식 등은 황제의 권위를 강조했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홍릉 비각 표석에는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갈등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은 비문 서두에 ‘前大韓’이라는 표현을 넣자고 주장했으나 대한제국은 이를 강하게 반대하며 수년간 표석이 방치되기도 했다.

이번 ‘왕릉팔경’ 프로그램은 과거를 단순히 되짚는 시간을 넘어, 미래 세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지 묻는 자리다. 화려한 석물과 질서정연한 배치는 위엄을 풍겼지만, 그 속에는 주권을 잃은 황제와 황후의 쓸쓸한 이야기가 잠들어 있었다. 오늘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왕릉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뒤에 담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의미일 것이다.